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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가는 교회] 하늘의 태양이 아닐지라도! 밤 하늘에 달과 별이 못될지라도!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게 하소서♡
감리교를 세운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멀리하는 사람 100명을 내게 달라. 그러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요한 웨슬레는 그런 사람 100명을 원했지만, 사실은 이런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그런 분이 딱 한 분 계셨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범죄를 보시고 그대로 심판하셨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보시고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당장 체벌하지 않고 참아주고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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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들을 조롱하고 모욕합니다. "니가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 니가 무슨 목사냐?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 니 자신이나 구원해라!"고 예수님께 하던 대로 우리에게도 똑같이 희롱과 모욕과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탄의 공격을 받은 성도들은 낙심하여 "맞아!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며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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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일까요? 맞습니다!! 배반 당하고 버림 당해도 끝까지!! 배반한 그들을 사랑하기로 결단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오히려 그들의 가장 더러운 곳!! 온갖 오물과 먼지가 붙어 있는 발을 씻기심으로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식사하시던 예수님의 머리에 그것을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면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제히 그 여인을 비난합니다. 왜일까요? 맞습니다!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더 값진 행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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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라는 '소유의 개념'으로 모든 사람과 사물을 보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너는 누구냐?"라는 '존재의 개념'으로 모든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속한 시간, 물질, 재능, 역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첫날 성전에 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탐심을 채우던 장사치들의 상을 엎으시고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시는 길에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예수님이 저주하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럼 이 두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원래 무화과 나무는 일년에 몇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비롭다는 말의 의미는 '고통을 같이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높아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낮아지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런 우리를 반드시 높여주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마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등'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즉 '간접적'으로 비춰지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것을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오신 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즉 '직접적'으로 비춰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목적과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목적은 다릅니다. 아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아이와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인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불신자와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
모세는 하나님께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백성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가시는 길을 보여 주십시오!" 즉 우리가 계획하여 가는 죄인의 길을 포기하고 당신의 인도하시는 의인의 길로 가겠습니다라는 순종의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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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일지라도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친구라고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수 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없는 관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전까지 생활한 광야생활은 마치 천국에 들어가기 전의 우리의 인생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한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던 것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아닌 다른 신도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마음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거기에 절하며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