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소유욕이 일어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저 사람은 오늘 나와 함께 있지만, 내일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누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겠는가?’ 그대의 여자는 그대를 떠날지도 모른다. 아이들 역시 자라나 그대를 떠날지도 모른다. 남편 역시 그대를 버릴지도 모른다. 누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겠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를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대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구속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은 감옥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사랑이 감옥을 만든다면, 미움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 사랑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 욕구가 아니라 나눔의 사랑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사랑은 넘쳐흐르는 기쁨을 나누는 일이다. 너무 많은 기쁨으로 그것을 담고 있을 수 없을 때 그대는 그것을 함께 나눈다. 그러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시와 엄청난 아름다움이 생긴다. 그것은 저 너머로부터 온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여러 번 나는 사랑의 기술을 배우라고 말했다. 내 말의 의미는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하는 과정이다.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그대는 끊임없이 땅속의 많은 층, 자갈과 바위 따위를 치워야 한다. 그러면 갑자기 물이 솟을 것이다. 물은 언제나 저 아래에서 흐르고 있다. 사랑도 그러하다. 사랑은 그대 존재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그것은 이미 흘러넘치고 있으나 치워버려야 할 많은 바위와 자갈에 의해 막혀 있다.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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