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구로, 야간 민원 전담팀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최대한 건조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었다.
새벽 시간대의 민원은 대부분 취객의 주정이거나, 한밤중 층간 소음에 대한 히스테릭한 고발이다.
이런 류의 민원은 그냥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관할 부서로 이관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주면 된다.
"저기요, 가로등이... 가로등이 자꾸 저를 따라오거든요?"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고, 뭔가 극한의 공포에 질려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모니터 하단에 띄워 놓은 민원 대응 매뉴얼을 클릭했다.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현재 위치가 어디십니까?"
"지금...신도림역 2번 출구 쪽에 공원이거든요? 근데 제가 걸을 때마다 불빛이 따라서 움직이고요. 그림자, 그림자가 막 반대 방향으로 생기거든요?"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하품을 간신히 참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가로등 고장] > [조명 오작동]
"시설물 오작동 신고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담당자가 현장에 갈 거고요..."
"아니이! 고장이 아니라고! 걷고 있다니까요! 쇠 기둥이 땅에서 뽑혀 가지고 쿵쿵대면서 따라온다니까요!"
남자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잠이 확 달아났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파티션 너머의 김 과장님을 슬쩍 쳐다봤다.
김 과장님은 컵라면을 후루룩 거리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과장님은 내 시선을 느끼자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봐'
나는 재빨리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가로등이 어떻게 한다고요?"
"따라온다니까요! 다리가 달린 건 아닌데, 그냥 그 기둥째로 점프하듯이... 아씨, 지금 제 뒤 10미터까지 왔어요. 불빛이 너무 뜨거워요! 살려주세요!"
김 과장님이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입가에 묻은 국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내 자리로 와서 모니터 화면을 거침없이 가리켰다. 과장님이 가리킨 곳은 [시설물 오작동] 탭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과장님은 마우스 스크롤을 쭉 내려서 [기타 생물 및 비생물 이동 현상] 이라는, 처음 보는 카테고리를 클릭했다.
"신입아. 거기 탭 134 페이지 가보그라. '가로등' 항목 있지?"
나는 당황하며 매뉴얼을 넘겼다. 공무원이 된 지 이제 3개월이 지났지만, 매뉴얼에서 100페이지 이후는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134페이지라니, 여기는 연수원에서 교육 받을 때도 와 본 적 없는 구간이었다.
[가로등이 보행자를 추적하는 경우]
1. 신고자에게 가로등의 '불빛 색깔'을 물어본다.
2. 주황색일 경우: 즉시 도주를 권고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3. 보라색일 경우: 신고자에게 '눈을 감고 제자리에 멈추라'고 지시한다.
4. 흰색일 경우: 신고자에게 가로등 밑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한다.
"이게...뭔가요?"
"됐고, 빨리 물어봐. 시간 없어."
과장님의 재촉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그... 가로등 불빛이 무슨 색입니까?"
"아니 그게 중요해요 지금?! 미치겠네 진짜!"
"중요합니다! 선생님, 살고 싶으시면 빨리 말씀해주세요! 무슨 색입니까?"
나도 모르게 격앙되어 민원인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히, 흰색이요. 아주 밝은 흰색인데..."
과장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4번 항목을 가리켰다.
[흰색일 경우: 신고자에게 가로등 밑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한다.]
근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자기를 죽일 듯이 쫓아오는 괴물 가로등 밑으로 들어가라니?
하지만 과장님은 프린터에 용지가 걸린 것 정도의 단순한 일을 처리하는 듯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선생님, 잘 들으세요. 지금 당장 멈추시고, 그 가로등이 다가오면, 그 밑으로 들어가세요."
"뭐라고요? 당신 미쳤어?! 잡히면 죽는다고!"
"매뉴얼이 그렇습니다! 가로등 바로 밑에, 빛이 가장 밝게 비추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로 들어가서 웅크리세요. 빨리요!"
"에이씨...으아아악! 온다! 온다!"
엄청난 굉음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거대한 무언가가 아스팔트를 내려 찍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왠지 그 상황이 상상 되는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 들어갔어요?! 들어가셨냐고요!"
잠시 후, 굉음이 멈추며 지직거리는 노이즈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여보세요?"
그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지고, 나아가 어딘가 몽롱한 듯한 목소리였다.
"네!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따뜻한데요. 여기, 정말 밝아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냥 하얗고... 너무 따뜻하네요."
"가로등은요? 이제 멈췄습니까?"
"가로등? 아...네. 제 위에 있어요. 저를 안아주는 거 같은데요. 덕분에 너무 편하게 있어요. 감사합니다."
남자의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를 든 채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과장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인 자리로 돌아가 다시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처리 완료 눌러. 분류 코드는 '자발적 귀속'으로 설정 하고."
"과장님...방금 그거 뭐에요? 그 사람, 무사한 거 맞는 거에요?"
"무사하지, 그럼. 가로등 흰색이라매. 흰색은 배 부른 상태인거라 사람 안 먹어. 그냥 빛만 쬐어주고 갈 거야. 그 분도 그거 운 좋은 줄 알아야지. 저번 주에 신림동에선 보라색 떠 가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과장님은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요즘 시설관리공단 놈들 일을 어떻게 하는거야? 사육장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자꾸 탈주를 하냐? 하여간 공무원 새끼들 빠져가지고."
나는 멍하니 모니터에 떠 있는 '처리 완료' 문구를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기계적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행복한 구로, 야간 민원 전담팀입니다."
"저기요...저희 집 아파트 복도에요. 벽에... 벽에 문이 하나 더 생겼는데요. 원래 101호랑 102호 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그 사이에 101.5호라고 생겼어요..."
이번엔 여자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이제 놀라지 않았다.
과장님을 쳐다보는 대신, 자연스럽게 매뉴얼의 목차를 검색했다.
'문', '숫자', '소수점'.
[공동 주택 내 불명확한 호수가 발생한 경우]
이거다.
"선생님, 당황하지 마시고요. 그 문이라는 거에 외시경 같은 게 달려 있습니까?"
"네? 아...네, 달려 있어요. 근데 안에서 막 빨간 불빛 같은 게 새어 나오는데..."
나는 매뉴얼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절대 외시경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할 것.]
[신고자에게 날달걀을 깨서 문 틈으로 흘려넣으라고 지시할 것.]
"선생님, 냉장고에 달걀 있으시죠?"
"네? 달걀은 왜...?"
"지금 당장 두 개 정도 깨서, 그 101.5호 문 틈 아래로 흘려 넣으세요. 흰자랑 노른자 섞지 마시고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는 지금 무서워 죽겠는데 장난 하시는 거에요?"
"식사 시간이라 그런 겁니다. 그냥 배고파서 생긴 문이니까, 먹을 걸 주면 사라질 거에요. 빨리하세요. 문 열리기 전에."
나는 어느새 김 과장님처럼 건조하고 태연한 목소리로 민원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여자가 울먹이며 전화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모니터 한 구석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쳐다봤다.
근무 첫 날, 내가 적어 놓은 메모였다.
'친절. 봉사. 경청.'
나는 볼펜으로 그 메모를 북북 긋고, 그 밑에다 새로 적어 넣었다.
'매뉴얼 준수.'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안도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와...달걀을 넣어주니까 쩝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말 문이 벽으로 변하면서 사라졌어요!"
"다행이네요. 추가로 불편하신 사항 있으십니까?"
"아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기며 나는 처리완료 버튼을 눌렀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3시 15분, 퇴근까지 아직 4시간이나 남았다.
문득 사무실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사무실 형광등 커버 안 쪽에 시커먼 머리카락 뭉치 같은 것이 끼어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걸 본 과장님은 혀를 차며 툭 뱉었다.
"에이 씨 진짜. 총무과에 형광등 갈아달라고 한 지가 언젠데. 신입아, 저거 보지 마라. 괜히 눈 마주치면 저거 너한테 떨어진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내리고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매뉴얼을 정독해야겠다.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의 규칙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4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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