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에 붕대를 감고 왼 팔이 절단된 병사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4명의 파견 병사 중 21명의 병사만이 살아서 귀환하였다. 그는 그 21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앞에 앉은 교수는 입을 열었다.
"전에 해준 이야기는 잘 들었네. 도움이 많이 됐어."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 자네는 그날 정말로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병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교수는 그의 앞으로 종이를 내민다.
"뭡니까? 이건?"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시뮬레이터 결과네. 자네와 같은 군인 1000여 명이 실험으로 참여했지"
"자네가 탈출한 공간과 같은 난이도로, 수칙이 없다는 가정하에 23개의 규칙 중 13개만을 찾아낸 후 그들은 전멸했네"
"물론 그들의 경우 생과 사를 직접 가로지르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떠한 통신도 불가능하던 아비규환의 지옥과는 달리 1000명이 의견을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교수는 종이를 넘기며 말을 이어간다.
"그날의 수칙은 정말 그들의 피로 쓰인 수칙이 맞는가?"
"오차 범위가 있다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병사의 언성이 높아진다. 교수는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진정하고 내 말을 듣게. 나는 자네가 겪은 일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단지 그 수첩에 적혀있던 것이 희생자들이 남긴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세"
병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원숭이 타자 이론에 의하면 그 수칙도 언젠가 만들어질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고작 5000명가량의 목숨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일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물음에 교수는 답한다.
"어쩌면 자네를 살려준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정체 모를 무언가의 악의였을 수 있다는 거네"
"...?"
"제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던 게 그 괴현상을 일으킨 존재가 의도한 일이라는 말입니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네"
병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방금 말했다시피 시뮬레이션은 차치하고서라도, 과거와 생환율 자체가 말이 안 되네"
"5000명 중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자네들은 20%나 생환했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그곳을 수색하기 위한 추가 결정을 내린 거고"
"생환자가 0명이었다면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병사는 교수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저를 미끼로 삼으려고 일부로 내보냈다는 겁니까?"
"윗사람들한테 자네들 목숨은 서류상의 수치에 불과하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일어나는 이현상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적어도! 그날의 공포를 아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곳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어"
"모든 건 비밀리에 유지됐고 사람들은 정보조차 접할 수 없었지"
"그곳이 봉쇄된 직후 그 공간에서 목숨을 잃는 이는 없었다는 말이야"
"하지만 이제 인류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그곳에는 계속 사람들이 들어갈 것이야"
"목숨을 걸고 말이지"
병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필사에 가득 찬 자신의 몸부림침이 의미 있는 일이기를 바랐다.
자신의 앞을 걷던 수백의 병사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심을 가젔었다.
교수의 말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저를 쫓던 괴물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살아생전에도 이기지 못했던 존재를 어떻게 죽어서 이긴단 말인가?"
"그곳에 적힌 수칙대로 행동 했을 때 저에게 어떠한 위협도 없었습니다."
"자네 생각에는 그 수칙이 쉽고 찾을만 하다 생각할지도 모르네"
"그럴 듯 한 수칙들이었어. 코끼리 코를 하고 세바퀴도는 이상한 수칙들은 아니였으니까"
"하지만 자네는 그 혼란의 상황속에서 그런것들을 생각하고 찾아 낼 수 있다 생각하는가?"
"나라면 17,20번 수칙은 절대 찾지 못했을걸세"
격분한 병사가 책상을 세게 내리친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말씀도 추론일 뿐 아닙니까!?"
"그곳에서 이치를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고, 그들이 저를 도울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교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한다.
이윽고 흥분이 가라앉자 그는 마지막 이야기를 병사에게 건넨다.
"그날 자네의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이었네"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그리고 자네의 말도 맞아. 상식과 이치를 벗어난 일에서 내가 하는 말도 추론일 뿐이야"
"그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네"
"수칙이란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쓰이기가 어려워"
"그것은 정말로 피로 쓰이는 게 맞는가?"
"어쩌면 누군가의 악의로서 쓰이는 것은 아닌가?"
"자네는 그 몸이 되어서도 다시 파견 지원했더군"
"부디 내 말을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게"
교수는 밖으로 나간다.
병사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움켜쥔다.
그날 자신이 안도감을 느끼며 따르던 그들의 뒷모습은 정말로 죽은 이들의 배려가 맞는가?
수칙은 피로 쓰이는 건가? 악의로 쓰이는 건가?
출처: https://gall.dcinside.com/m/napolitan/8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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