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리는 대한민국 내 불가해(不可解) 구역 중 비교적 주목도가 낮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추정 면적이 몹시 협소하며 공식적으로 확인된 진입 경로도 정광리 종합터미널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종합터미널의 존재만이 정광리를 알 필요가 있는 유일한 이유다. 오늘은 그 곳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1 - 정광리 종합터미널이란?
2 - 진입 경로
3 - 버스 목록
4 - 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1 - 정광리 종합터미널이란?
어째서 그 상스러운 것들이 리 같은 소규모 행정구역에 종합터미널을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것들의 사고방식을 짐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들의 명칭은 의견이 엇갈려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필자도 낮도깨비라고 의견을 냈지만 반려되었다.)
터미널의 크기는 협소하다. 층수는 1층이며, 시설이라곤 승차장, 대합실, 매표소, 화장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끔씩 다른 구역이 목격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갈 법한 장소는 앞서 열거한 곳들뿐이다.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후 9시 전까지는 다른 승객이 목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외형은 현실의 노후화된 2000년대 소규모 터미널과 비슷하다. 승차장이 있는 외부로 나가면 터미널의 주변은 황폐한 평야뿐이다.
대합실은 매표소 옆에 있으며 의자 열여섯 개와 구식 대형 TV가 있다.
근무중인 직원은 한 명뿐이다. 과거 57번째 터미널 진입자였던 강** 씨다. 생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씨는 여전히 인간으로 추정되며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화장실은 그리 깨끗하지는 않으나 휴지는 비치되어 있다. 가끔 사용중인 칸이 있다고 한다. 안에 누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 - 진입 경로
어디든 좋으니 도망가고 싶다고 소망할 경우 진입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로또 1등 확률보다 낮으니 일상생활 도중 그런 생각을 억누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진입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일반인들이 대다수이나, 가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던 사람이나 교정시설 수감자가 진입하는 경우도 보고된다.
3 - 버스 목록
가격
대인 : 18, 000원
중, 고생 : 14, 000원
소인 : 9, 000원
현금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신용카드 결제도 지원된다. 2000년대 단말기 형태의 한계로 현대식 간편 결제는 거절된다.
매표소의 직원에게 값을 지불하고 지류 승차권을 받는 게 첫 번째다. 그런 다음 승차장에서 대기하다, 오후 9시가 되기 전까지 터미널에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한다. 그 후 원하는 정류장의 도착 안내방송이 나올 때 하차벨을 누르고 내리면 끝이다. 보통 2대, 가끔 3대 또는 0대다.
다음은 지금까지 목격된 버스의 목록이다.
1) 시외버스 3228
소요 시간: 5시간~10시간
정류장: 정광리 터미널 - 하늘 - 산 - 바다 - 정광차고지
어떤 하늘, 산, 바다인지는 알 수 없다. 창문이 없다는 점 외에는 일반 시외버스와 동일한 외형이다. 무인 버스이며 다른 승객이 탑승하지 않는다. 산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출력될 때 하차를 권장한다.
하차한 뒤 등산로나 입구 근처라면 운이 좋은 것이다. 대부분은 산의 무작위적 위치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한밤중이거나 등산로를 찾지 못하겠다면 휴대폰으로 지체없이 조난 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
하늘, 바다, 정광차고지에서 하차한 사람들은 실종되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그 곳의 한복판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 마을버스 6
소요 시간: 10분~1시간
정류장: 정광리 터미널 - 미두아파트10단지 - 서말초등학교 - 당정역 - 임병원 - 정광차고지
일반 마을버스와 동일한 외형이다.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교통약자석에 앉는 것이 좋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생김새는 껄끄럽다. 행동거지는 더 껄끄러울 것이나, 그들은 교통약자석에 앉은 사람은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고로 인간들은 하차하기 전까지 좌석을 사수하는 편이 좋다. 내릴 정류장은 당정역이다. 유일하게 한국 영토 내부에 실재하는 정류장이다.
사례 추산 결과, 버스는 절반 정도의 확률로 만원이 된다. 그러면 장애인과 고령자 중 하나가 교통약자석으로 다가와 양보를 요청할 것이다. 당연히 안 된다.
장애인: 좌석 옆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침묵으로 양보를 요구한다. 그것을 눈으로 보고도 비켜주지 않으면 상황은 나빠질 것이다. 그것이 탑승하기 전에 만석이 될 낌새가 보일 때쯤 미리 자는 척을 하고 있으면 된다.
고령자: 연륜이 쌓였는지 자는 척이 통하지 않는다. 좌석에 앉아 있을 합당한 이유를 대야 한다.
어린이,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환자와 부상자, 무거운 짐을 든 자 중 하나에 해당될 경우: 해당 사유를 들어 거절하면 된다.
해당되지 않을 경우: 위에 열거된 교통약자를 재량껏 사칭하면 된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교통약자는 많다.
대처가 적절하지 못했을 시에 벌어지는 일은 다양하나 목숨은 두고 내릴 수밖에 없다.
3) 시내버스 27
소요 시간: 1분~5분
정류장: 정광리 터미널 - 집 - 회의실 - 무대 - 광장 - 정광차고지
Fremdschämen(대리적 당혹감)으로 불리는 인간형 불가해가 운행하는 버스다. 해당 불가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기고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종점을 제외한 모든 정류장이 국내에 위치해 있으므로 어디서 하차해도 무방하다.
매우 짧은 소요 시간을 주목 및 유의해야 한다. 한눈을 팔거나 조금만 망설여도 정류장을 놓칠 위험이 크다.
집: 한 명 이상의 집주인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가정집 중 한 곳에 하차하게 된다. 세부적인 장소는 거실, 안방, 화장실 등 다양하다.
회의실: 회의가 진행되는 모든 회의실 중 한 곳에 하차하게 된다. 증언으로는 주로 테이블 위로 떨어졌으며, 항상 최소 6명 이상이 참석 중일 때 떨어졌다고 한다.
무대: 진행 중인 모든 종류의 공연 중 한 곳의 무대 정중앙에 하차하게 된다. (콘서트, 뮤지컬, 연극, 클래식/무용, 오케스트라)
광장: 국내의 모든 광장 중 한 곳에 속옷바람으로 하차하게 된다. 속옷을 입고 있지 않을 경우 알몸으로 바로 건너뛴다고 한다.
4) 특수여객 (번호판 없음)
소요 시간: 알려지지 않음
정류장: 정광리 터미널 - 천국 - 지옥 - 정광차고지
명백한 사유로 탑승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해당 버스에 고의로 탑승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터미널부터가 고의적으로 방문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둘째치고, 그들은 낮도깨비들이 천국이라고 써붙인 장소를 정말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인간 망신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독자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4 - 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푯값이 없거나, 버스가 0대거나, 특수여객만 있을 경우에는 대합실에 앉아 아래의 차선책 중 무엇을 택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오후 9시 전까지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다.
푯값이 없을 경우에는 매표소 직원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낫다. 강씨는 근무지로부터 인간 월급을 꼬박꼬박 받지만 쓸 곳이 있기는커녕 터미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부탁하면 보통 내줄 것이다. 그를 영원히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 외 문제라면 일단 승차장 뒤로 조금 돌아가 보자. 작은 주차장에 택시, 일반 승용차. 두 대 정도가 있을 것이다.
택시는 종종 자리를 비우지만 탈 수만 있다면 타는 게 좋다. 평범한 택시처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다만 기사가 운임을 돈으로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확인된 취급 물품은,
- 안경
- 홍삼캔디 한 봉지
- 도라지 젤리 한 봉지
- 타 불가해 '대나무대축제' 의 대나무 3마디 이상
- 담배 한 갑
- 소주 한 병
등이다. 생환자들 대부분은 안경이나 담배를 대가로 지불했다. 나머지 물품들도 있기만 하면 지불해도 무방하다. 후불이지만, 지불하지 못할 경우 기사가 승객을 죽인다.
승용차는 주차된 위치에서 5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관찰해야 한다. 보통 눈이 화등잔만한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있다. 거리만 지키면 계속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면, 그대로 차에 타서 터미널을 빠져나가면 된다. 도로에 진입하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실재하는 시골길 중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테니. 차를 따로 처분할 필요는 없다. 내리면 알아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상으로 정광리 종합터미널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을 마친다.
언급된 여러 선택지는 어디까지나 생환자들의 불완전한 증언에 기댄 임시방편일 뿐이다. 정답은 없다. 최선은 우연히라도 그곳에 진입하게 되었을 때 침착함을 되찾는 방법뿐이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40680&page=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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