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위대한 발명품이 완성되었다.
다른 멍청이들은 '지구'가 아무런 의지가 없는 무기물이라고 떠들어댔지만 난 달랐다.
그것을 지금 이렇게 증명했지 않는가!
"당신은... 지구입니까?"
희열에 찬 목소리로 첫 질문을 하였다.
[o]
손에 쥔 화면에는 분명한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에는 아무런 음성 인식 기능이 없었다. 지금 내 주위에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몇번이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지구의 의지리라!
"그것을 증명 할 수 있습니까?"
[o]
그와 동시에 약간 떨어진 곳에 벼락이 내리 꽂혔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였다.
"아아..."
나는 한동안 발명품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지구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는 듯 한 답을 해주었다. 극히 단순한 대답에도 기이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학회에는 발표하지 않았다. 지구가 그것을 막았다. 나는 그것이 마치 나만이 그의 의지를 볼 자격이 있다는 것 같아서 그 말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한때 나의 원동력이었던 증명욕구는 이젠 뒷전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지구와 대화하는 것이 나를 만족시켰다
지구와는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때에는 어릴적 꿈이었고, 어느 때에는 읽었던 책이 주제가 되었다.
내 친구들, 내 가족들은 나를 떠나간지 오래였다. 그들은 내가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음에도 질린 표정을 하며 나를 부정하였다. 멍청하기는!
그러던 어느날, 내가 뉴스를 본 뒤 꺼낸 주제가 그 일의 시발점이었다.
"또 다시 당신의 온도가 1도 올랐다고 합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해가 될까요?"
[o]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저 평소대로의 화두였을 뿐인데, 순식간에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내 유일한 이해자가 걱정되어 여러 질문들을 마구 쏟아냈다.
"세상에... 기후 변화가 인류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었습니까?"
[o]
"그럼 제가 무얼 해야 당신에게 도움이 될까요?"
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싶어 그에게 여러 질문을 하였다. 온난화를 극복할 여러 대안들이 전부 지구에게 반려당했다. 답답했지만 오랜만에 내 과학자 정신에 불을 붙이는 일이었다. 질문 중 긍정의 대답이 나오면 그날은 잠도 안자고 질문에만 몰두하기도 하였다.
"역시 인류가 당신에게 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x]
"아니라구요? 그럼 일부의 인간이 당신에게 해가 됩니까?"
[o]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x]
여러 질문 끝에 그나마 정답에 근접하는 듯한 대답이 나왔다. 자비로운 지구는 인류를 싫어하지 않았다. 대신 일부 인간이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긍정 할 뿐이었다.
"제가 그들을 구별하는 것에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o]
나는 내 발명품을 들고 사람들을 판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해가 되지 않았으나 몇명의 사람들은 해가 되었다. 나는 머리를 굴려 그들을 처리 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어느 정치인의 목을 망가뜨렸다. 지구가 감시가 없다고 확인해 주자 나는 그의 물에 약을 타 목을 망가뜨렸다.
어느 광부의 팔을 망가뜨렸다. 동굴을 무너뜨리면 다른 사람들이 휘말려 지구가 싫어했다. 나는 그 광부의 장비를 약간 고장내 오작동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어느 아이를 부모와 떨어뜨렸다. 지구는 기꺼이 폭풍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혼자 남아 울고있는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부모와 떨어진 곳으로 대피시켜 주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해 하며 낮선곳의 대피소에서 부모를 찾았다.
하지만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 혼자만으론 무리가 있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o]
나는 곧바로 환경 단체로 달려갔다. 극단주의적인 환경단체의 믿음을 사는 것은 간단했다. 나는 지구의 도움을 받아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보여주었고, 기이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보여주었다. 처음엔 믿지 못하던 그 눈빛들이 점차 믿음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잊고 있던 증명욕구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을 반복하고, 다른 단체로 가서 반복하고, 다시 반복했다. 꽤 오랜시간이 지났을때엔 많은 사람이 나를 따랐다. 어느 사람들은 나를 사이비 교주라고 불렀지만, 지구가 벼락을 몇번 쳐주면 어느새 그들도 점차 바뀌어갔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게 해를 끼치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지구에 해를 끼치는 추악한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그들을 설득하고, 제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우리는 한 나라를 가득 채워 점거했다. 아니, 그 나라의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로 행해졌으니 점거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절차였다. 나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세계에 나의 주장을 설파했다.
결국 나는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세계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전쟁은 내가 일부러 피하였다. 전쟁으로 지구가 얼마나 파괴되는지 열심히 설파한 덕에 나를 따르는 이들이 다른 국가의 전쟁시도를 막아주었다.
나는 나만을 바라보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인터넷을 피하십시오. 인터넷을 사용할때 소모하는 에너지는 지구를 병들게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인공 소재를 피하십시오. 지금도 저 바다 밑바닥엔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이 여러 생명을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화력 발전을 피하십시오. 맑은 하늘을 물들이는 저 검은 연기가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 열악한 방식의 축사를 피하십시오. 지구는 모든 생명에게 공평합니다! 동물들의 통곡에 지구가 슬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이러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망설임은 없었다. 지구는 내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해주었고, 나는 그것을 전세계에 설파했을 뿐이다.
어느새 내 말을 전세계에 전해줄 수단이 낡아버린 라디오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오래된 건물중 그나마 깨끗한 건물 안에 앉아, 천연소재로 된 천을 걸치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노년기를 지내는 중이다.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과학 발전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과학자라는 단어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사장되어버린 단어이다.
나는 나의 끝을 예감하곤, 늘 쥐고 있던 발명품에 질문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나요...?"
[o]
"정말로... 내가 죽고 나면... 이 판별기를... 파괴하길 원합니까...?"
[o]
"그럼... 이제... 안녕히..."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내가 온갖 것을 없앴기 때문에 죽어가는 나를 돕는 장치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타들어가는 생명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신을 잃어갔다. 죽어가는 몸에 마지막까지 남은 청각으로 사람들이 나의 죽음에 슬퍼하며 내 유언을 따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콰지직! 칵! 콰각!!
내 위대한 발명품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라디오를 부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사람들은 내 유언대로 마지막 남은 기계를 부섰다.
이제 지구에 해를 끼치는 것이 전부 사라질 것이다.
한때 도시였던 곳은 푸르른 생명들로 가득 차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다시금 먹이사슬의 법칙을 따르게 될것이다.
유해물질을 뿜어내던 공장도, 인터넷도, 기계장치도 없다.
인류는 순수한 생명으로 돌아가 지구의 순환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잠깐, 분명 전기를 사용 못하게 했는데 왜 판별기엔 답이 나왔지?
애초에 지구는 한때 불타는 행성이었고, 한때 빙하기를 겪던 행성이었는데 그 조금의 온도상승에 해를 받았다고?
잠깐,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걸 생각 못했지?
아니 나는 그렇다 쳐도 다른 과학자들은 이걸 생각 못했나?
잠깐, 아무리 지구라고 해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가능한가?
그건 지구의 과학법칙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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