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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괴담회
D의 공포
아는게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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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고로 시력을 잃은 지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집 앞 공원을 걷는 건 매일 하는 일이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막연한 공포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팡이 끝이 바닥을 툭툭 칠 때마다 느껴지는 진동과 청력만이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조심하세요. 거기 보도블럭이 깨져 있어서 발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낯선 목소리와 동시에 누군가 내 팔꿈치를 가볍게 잡아주었다. 

 

나는 놀라 멈춰 섰다.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을 센터의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점자로 된 명함을 건네며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안내견 서비스를 제안했다.

 

"일반 기관에서 보급하는 리트리버와는 조금 다릅니다. 저희 아이들은 훨씬 영리하고 주인의 습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훈련받았거든요. 지팡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생활이 편해지실 겁니다."

 

그의 말투는 차분했고 신뢰감이 느껴졌다. 

 

나는 복잡한 절차 없이 간편하게 매칭이 가능하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그는 며칠 뒤 내 집으로 직접 안내견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 당일,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었을 때 직원과 함께 그것이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이 녀석의 이름은 '해리'입니다. 힘이 꽤 세요. 가슴줄을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세요. 녀석이 주도권을 쥐고 당신을 이끄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해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 녀석의 등 위를 더듬었다. 

 

털은 짧고 아주 빳빳했다. 손을 더 아래로 뻗자 녀석이 움찔하며 내 손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해리가 낯을 좀 가려서요.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직원의 말에 나는 손을 거두었다. 해리의 가슴줄을 건네받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자, 이제 산책을 한번 나가보실까요? 일주일만 함께 지내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해리의 가슴줄을 꽉 쥐고 현관을 나섰다. 

 

녀석의 발소리는 보통의 개들처럼 가벼운 '탁탁'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질질 끄는 듯한 '스윽, 스윽' 소리에 더 가까웠다.

 

나는 그 소리를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꼈지만, 곧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해리는 멈춰야 할 곳에서는 정확히 멈췄고, 방향을 바꿀 때는 가슴줄을 통해 미묘하게 몸을 틀어 신호를 보냈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타이밍도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신호음이 울리기 직전에 이미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고, 내가 한 발 늦게 멈추면 오히려 해리가 줄을 살짝 당겨 나를 제자리에 세웠다.

 

직원이 말했던 것처럼, 녀석은 정말 영리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해리와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직원은 환히 웃으며,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라는 말만을 남긴 채 돌아갔다.

 

 

 

[2]

다음 날, 나는 해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지팡이를 짚고 다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했다.

 

집 근처 작은 공원까지 가는 길도 훨씬 편했다.

 

해리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었고, 자전거가 지나가면 잠깐 멈춰 서서 기다렸다.

 

공원 벤치에 도착하면 녀석은 알아서 걸음을 늦추고 내 다리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 벤치에 앉아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반년 넘게 느끼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해리는 묵묵하게 앞에서 길을 이끌었다.

 

집에서도 녀석은 조용했다. 훈련을 잘 받은 모양이었는지, 절대로 짖는 법이 없었다.

 

내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천천히 다가와 발치에 몸을 낮추는 기척이 느껴졌고, 밤에는 침대 옆 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끔 손을 뻗어 녀석의 등을 몇 번 쓰다듬었다.

 

여전히 털은 짧고 빳빳했지만, 이제는 그 촉감도 꽤 익숙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조금 멀리 가볼까?”

 

해리는 대답 대신 가슴줄을 살짝 앞으로 당겼다.

 

마치 정말로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줄을 잡고 따라 걸었다.

 

그리고 문득, 반년 동안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하지만 평온한 일상은 아주 사소한 어긋남에서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공원에 사람이 많았다.

 

해리의 안내를 받아 벤치로 향하던 중, 옆을 지나가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아저씨 봐. 저 아저씨 왜 저러고 있어?”

 

나는 잠깐 걸음을 늦췄다.

 

아마도 지팡이 없이 걷는 내 모습이 신기했을 것이다. 시력을 잃은 뒤로는 낯선 시선을 받는 일도 꽤 익숙해졌다.

 

아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게 아이의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황급히 멀어지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벤치에 앉았다.

 

해리는 늘 그렇듯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해리의 등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짧고 빳빳한 털이 손바닥에 스쳤다.

 

녀석은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뒤로도 사람들의 반응은 묘했다. 

 

내가 길을 지나갈 때면 활기차게 떠들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어떤 이는 내가 지나가기도 전에 멀찌감치 길을 비켜섰고, 가끔은 누군가 숨을 들이키며 억지로 비명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해리는 그럴 때마다 내 다리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녀석의 체온은 평소보다 뜨거웠다. 

 

나는 사람들이 안내견을 신기해하거나, 혹은 덩치 큰 해리를 무서워하는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위화감은 집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한밤중, 목이 말라 잠에서 깬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해리는 평소처럼 침대 옆 바닥에 엎드려 있는 기척이 났다. 

 

그런데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거실 한가운데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스윽, 스윽.’

 

마치 무언가로 거실 바닥을 닦는 듯한 소리였다. 

 

내가 멈춰서자 소리도 함께 멈췄다.

 

“해리? 안 자고 뭐 하니?”

 

어둠 속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숨을 꾹 참는 듯한 미세한 공기의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의아했지만 피곤한 탓이라 여기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3]

다음 날 아침에도 우리는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해리가 가슴줄을 가볍게 앞으로 당겼다.

 

나는 익숙한 힘에 몸을 맡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멀리서 청소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언제나처럼 횡단보도 앞에서 해리는 정확히 멈췄다.

 

신호음이 울리고 우리는 길을 건넜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였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 발걸음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 죄송합니다!”

 

어떤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마 물건을 옮기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것 같았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조금 돌렸다.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잠시간의 정적 이후, 곧바로 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억지로 밝게 꾸민 듯한 톤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자는 바로 옆에 서 있는 듯하면서도 한 걸음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때 해리가 움직였다.

 

녀석이 아주 천천히, 내 다리 옆에서 몸을 틀었다.

 

가슴줄이 미묘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마치 그 남자 쪽을 향해 서 있는 것처럼.

 

남자의 숨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말끝이 떨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해리가 이미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걸었다.

 

몇 걸음쯤 지나갔을 때였다.

 

뒤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미친 인간이야 저거…”

 

나는 걸음을 멈출까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정한 속도로 길을 이끌고 있었다.

 

 

 

[4]

그날 이후, 집안의 공기는 묘하게 축축해졌다. 

 

해리는 여전히 묵묵히 내 곁을 지켰지만, 손끝에 닿는 녀석의 상태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결정적인 위화감은 비가 오던 어느 날 찾아왔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해리의 몸은 빗물에 젖어 축축했다. 

 

나는 수건을 가져와 녀석의 몸을 닦아주기 위해 거실 바닥에 앉았다.

 

"해리, 이리 와. 감기 걸리겠다."

 

해리는 평소보다 느릿하게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섰다. 

 

수건으로 녀석의 등을 훔치던 중, 나는 손바닥에 닿는 질감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빳빳한 털 사이로 묘하게 미끈거리고 물렁한 감촉이 섞여 있었다. 

 

마치 털이 빠진 자리에 생살이 돋아난 것 같기도 했고, 가죽이 얇아져 내부의 골격이 그대로 만져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수건으로 그 주변을 한 번 더 문질렀다.

 

해리는 가만히 서 있었다.

 

녀석의 숨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천천히 오르내렸다.

 

결국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괜히 예민해진 것뿐일지도 몰랐다.

 

나는 남은 물기를 대충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는 늘 그렇듯 조용히 내 곁에 붙어 있었다.

 

 

 

[5]

직원이 다시 오기로 했던 날이 되었다.

 

나는 오전 내내 집에 있었다. 해리는 현관 근처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는 기척이 났다.

 

낮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도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잘못 기억했나 싶어 잠깐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잠시 신호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기계적인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나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혹시 내가 숫자를 잘못 눌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안내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습관처럼 손을 뻗었다.

 

손끝에 짧고 빳빳한 털이 닿았다.

 

나는 해리의 등을 몇 번 쓰다듬었다.

 

손이 털 사이로 조금 더 들어갔다.

 

그때였다.

 

손끝에 단단한 금속 같은 것이 닿았다.

 

마치 옷에 달린 지퍼 손잡이 같은 것.

 

나는 잠깐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거두었다.

 

안내견 장비의 일부일지도 몰랐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지이익— 지익—’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끝까지 올리는 소리였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4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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