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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괴담회
다시 찾은, '내 딸'
아는게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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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기계가 뱉어낸 종이에는 '대기인수 14명'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흡사 은행 창구 같은 풍경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땀으로 젖은 손수건을 꽉 쥐었다. 

 

내 딸 지민이가 실종된 지 정확히 3주가 지났다. 

 

경찰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전단지는 비에 젖어 쓰레기가 되었다. 

 

그러다 어제, 등기 우편 한 통이 도착했다.

 

[국가 지정 임시 보호 센터 - 귀하의 자녀를 보관 중입니다.]

 

우편에는 약도와 방문 시간, 그리고 지참 서류 목록이 적힌 게 전부였다. 

 

다만 '보호 중'이 아니라 '보관 중'이라는 단어를 쓴 게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104번 고객님, 3번 창구로 오십시오."

 

내 번호를 부르는 안내음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3번 창구에는 안경을 쓴 30대 중반의 남성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명찰에는 '상담관 김철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신분증이랑 통지서 주시고요."

 

그의 말투는 구청에서 등본을 떼어줄 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내밀자, 그는 콧등으로 안경을 추어올리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이지민, 만 7세. 실종일 3월 15일. 특이사항 없음. 맞습니까?"

 

"네, 네. 맞습니다. 저희 애는 어디 있나요? 다친 데는 없습니까?"

 

내 다급한 물음에도 상담관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관 상태는 양호합니다. A급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수령 절차도 간단하실 겁니다. 다만..."

 

그가 처음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동자가 약간 탁했다.

 

"인수 후에 발생하는 '식별 오류'에 대해서는 센터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식별 오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끔 보호자분들이 데려가신 후에 '우리 애가 아닌 것 같다', '성격이 변했다'며 클레임을 거시는 경우가 있어서요. 일단 센터 문을 나서는 순간 반품... 아니, 재입소는 불가능합니다. 신중하게 확인하셔야 해요."

 

'반품'이라니... 통지서에서부터 느껴온, 특유의 단어 선택이 역겨웠지만 나는 급히 서명란에 이름을 휘갈겼다. 

 

지금은 당장 지민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따라오시죠."

 

그는 열쇠 꾸러미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긴 복도에 들어서자 복도 양옆으로는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고, 문마다 작은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복도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보통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응당 들렸어야 할 울음소리나 떠드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여기, 아이들이 있는 거 맞습니까?"

 

"네. 지금은 '대기 모드'라서 조용할 겁니다."

 

대기 모드?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때마침 지민이가 있다는 204호 앞에 도착했기에 입을 다물었다.

 

"자,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가 건조하게 말하며 철문을 열자 새하얀 내부 공간이 펼쳐졌다. 가구 하나 없는 텅 빈 방 한가운데에, 지민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민이는, 실종되던 날 입었던 노란색 원피스 차림 그대로였다.

 

"지민아!"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끌어안았다. 

 

지민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빠."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지민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손과 발까지 다 확인했다. 다행히 지민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실종 전보다 더 깨끗해 보였다.

 

"지민아, 무서웠지? 아빠가 미안해. 늦게 와서 미안해."

 

"아니야, 아빠. 나 여기서 선생님들이랑 잘 놀았어. 밥도 맛있는 거 먹고."

 

아이가 내 품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드디어, 나를 말려죽이던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시만요."

 

갑자기 문가에 서 있던 상담관이 나를 막아섰다.

 

"확인은 다 끝나신 겁니까?"

 

"네? 아, 제 딸 지민이가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정밀하게 확인하셨냐는 뜻입니다. 기억 테스트는 해보셨나요? 신체적 특징 대조는요?"

 

지루한 일을 대하듯 하는 그의 태도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 모습이 마치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흠집을 확인하라는 점원 같아 보여서, 잊고 있던 악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제 자식 제가 못 알아볼까 봐 그러십니까? 비키세요."

 

내가 언성을 높이자 상담관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철을 열었다.

 

"아버님, 저희도 곤란해서 그래요. 지난주에도 다른 아버님이 그냥 데려가셨다가, 애가 밤마다 벽을 보고 중얼거린다느니, 키우던 강아지를 죽였다느니 하면서 항의하러 오셨어요. 그러니까 확실하게 확인해주시겠어요. 이 '개체'가, 본인의 자녀가 맞습니까?"

 

결국 그 단어가 내 이성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이라는 씨앗도 심어주었다. 

 

나는 그 상담관이라는 놈에게 공무원이고 뭐고 한방 먹여주려다가 문득 지민이를 다시 내려다봤다. 

 

내 품에서 지민이가 나를 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늘 봐왔던, 너무나 예쁜 내 딸의 미소였다. 

 

그런데, 지민이가 이렇게 잘 웃는 아이였나? 

 

평소 우리 애는 낯을 많이 가려서 처음 보는 장소에서는 내 다리 뒤에 숨곤 했다. 

 

그런데 3주 만에 만난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울지도 않고, 이렇게 의젓하게 웃는다고?

 

"지민아."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아저씨, 누구신지 알아?"

 

지민이는 상담관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밥 주시는 선생님. 착한 선생님."

 

"여기서 뭐 하고 놀았어?"

 

"음... 그냥 가만히 있었어. 선생님이 가만히 있으면 아빠가 온다고 했어. 그래서 가만히 연습했어."

 

'가만히 연습했다'는 말이 아이의 표현치고는 묘하게 들렸다. 

 

나는 말없이 지민이를 안아주면서 아이의 오른쪽 귀 뒤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아주 작은, 쌀알만 한 점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점은 있었다. 

 

그런데 점의 위치가, 원래 귓불 바로 뒤였던가? 아니면 원래 조금 더 위쪽이 아니었나? 갑자기 기억이 흐릿해졌다. 

 

매일 보던 딸의 얼굴인데, 갑자기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기, 상담관님."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 저희 애가 입소할 때 소지품 같은 건 없었나요? 머리핀이라든가."

 

"아뇨. 입고 계신 의류가 전부입니다."

 

상담관은 여전히 건조한 말투로 짧게 답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빨리 결정하시죠. 뒤에 대기인 많습니다. 데려가실 겁니까, 폐기... 아니, 수령 거부하실 겁니까?"

 

방금, '폐기'라고 하려 했던 건가? 

 

이쯤되자 나는 기분이 나쁜 걸 넘어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지민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만약에 제가 아니라고 하면요? '진짜' 지민이는 어디 있는 겁니까?"

 

"그건 모르죠. 저희는 발견된 개체를 보관만 할 뿐입니다. 만약 이 아이가 아니라면,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도가 높은 다음 개체를 보여드릴 순 있습니다. 다만 현재 재고... 아니, 수용 인원 중에서는 이 아이가 적합도 99.8%로 가장 높습니다. 다음 순위부터는 70%대라 외형적 차이가 좀 클 겁니다."

 

그가 하는 말의 대다수가 지금까지의 내 보편적 기준과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지민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래, 이 아이가 내 딸이 아닐 리가 없다. 점의 위치... 따위는 내가 착각한 걸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아이를 거부하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 지옥 같은 악몽을 다시금 겪어야만 한다.

 

뭐? 70%대의 유사도를 가진 아이? 그건 사실상 내 딸이 아니라는 소리잖아.

 

"...데려가겠습니다."

 

내가 반쯤 쉰 목소리로 말하자 상담관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밝아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 여기 출고증입니다. 1층 안내 데스크에 제출하시고 확인 서류 받아서 나가시면 됩니다."

 

나는 상담관이 주는 종이쪼가리를 받아 들고 도망치듯 그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는 내내, 양 옆의 철문들 안에서 수많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얼핏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한 부모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거나, 혹은 아이의 앞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센터를 빠져나와 차에 지민이를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나서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야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조수석에 앉은 지민이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지민아, 배 안 고파? 뭐 먹으러 갈까?"

 

"아빠."

 

지민이가 나를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응?"

 

"아까 그 아저씨가,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라고 했어."

 

순간, 핸들을 잡은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지민이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까의 그 밝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어떤 아빠가 저번에 데려간 애는 너무 많이 울어서 반품됐대. 그래서 나는 울면 안 된대. 그러면 이번엔 폐기처분 된대."

 

지민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반품이니 폐기처분이니 아까 그 상담관이 하던 말들과 비슷했다.

 

설마 센터에 있는 동안 지민이가 상담관이 하는 말을 듣고 배워온 걸까?

 

하지만 여자 아이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담담하게 입에 담기엔 너무 삭막한 말들이었다.

 

"지민아, 너 지금 무슨..."

 

"장난이야, 아빠."

 

지민이가 다시 방긋 웃었다.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는, 내가 알던 그 완벽한 미소였다.

 

"아빠! 배고파. 돈까스 사줘."

 

나는 등줄기를 타고 어떤 찬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득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보자 아까 센터에서 나오면서 받아온 서류 봉투가 보였다. 

 

봉투 겉면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등급: A / 재생 횟수: 4 / 주의: 기억 동기화 불안정]

 

나는 말없이 악셀을 밟았다. 

 

옆자리의 이 아이는 무조건 내 딸 지민이다. 

 

다시는, 그 센터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돈가스 먹으러 가자."

 

지민이가 환호하며 손뼉을 쳤는데 박수 소리가 묘하게 딱딱했다. 

 

나는 말없이 웃으면서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게, 

 

최대한 크게.

 

 

 

 

 

 

 

 

 

출처: https://gall.dcinside.com/m/napolitan/4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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