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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괴담회
굳어지기 전의 후두(喉頭)
아는게없음
댓글 1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45779

 

 

이 문서는 K대학교 인문학관 지하 3층, 제4 음성학 연구실에서 발견된 김선우 박사의 업무 일지 및 개인 메모의 필사본이다. 해당 연구실은 현재 폐쇄되었으며, 내부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녹음기 한 대와 이 노트만이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었다. 경찰과 학교 측은 실종된 연구원 3명의 행방을 찾고 있으나, CCTV에는 그들이 연구실 밖으로 나간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보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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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이 프로젝트의 가설은 간단하다. 아니, 간단해야 했다.

지도교수인 최 교수님의 지론은 이렇다.

"인간의 언어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퇴화의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언어학에서는 인간이 복잡한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언어를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최 교수는 반대다. 태초의 인류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즉각적으로 받아들였다.

시각, 청각, 촉각이 분리되지 않은 거대한 감각의 덩어리로 세상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 정보량이 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방대했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감각을 둔화시키고 정보를 '단어'라는 좁은 틀에 가두기로 결정했다는 가설이다.

즉, '사과'라는 단어는 붉고, 둥글고, 아삭하고, 달콤하며, 시간이 지나면 썩어가는 그 복잡한 실체를 '사과'라는 두 글자로 축소하여, 뇌의 과부하를 막는 차단막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차단막이 생기기 전, 최초의 인류가 냈던 소리를 복원하기로 했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 아직 후두가 굳어지지 않아 명확한 분절음을 낼 수 없었던 시기의 구강 구조를 시뮬레이션했다.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화석 'AL-228'의 턱뼈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10월 18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바벨(Babel)-0'이 첫 번째 결과물을 출력했다.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자체가 떨리는 듯한 진동으로 전해졌다.

기대했던 짐승의 포효나 웅얼거림이 아니었다.

치직. 크으윽. 스으.

마치 젖은 진흙을 맨손으로 휘젓는 듯한, 혹은 아주 얇은 막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최 교수는 이 소리를 '원음(原音)'이라 명명했다.

연구원인 민지는 그 소리를 듣고 묘한 말을 했다.

"박사님, 이 소리... 귀로 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어금니 안쪽이 가려워요."

나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혀뿌리가 뻐근하게 당겨온다.

마치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근육이 억지로 움직이려는 것처럼.


10월 21일

연구실 분위기가 이상하다.

최 교수가 3일째 말을 하지 않는다.

실어증에 걸린 것은 아니다.

아침에 커피를 건네면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검토할 때는 펜으로 정확히 오류를 지적한다.

하지만 입은 열지 않는다.

오늘 점심시간, 최 교수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씹는 대신, 혀로 빵의 표면을 아주 천천히, 마치 맛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질감을 스캔하듯이 훑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이 풀려 있었지만, 동시에 식당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민지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교수님은 그냥...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신 거겠죠."

"효율적이라니? 말을 안 하는 게?"

"말은 너무 느리잖아요. 그리고 부정확하고."

민지의 발음이 조금 뭉개졌다. 혀가 입안에서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모니터 속 '원음'의 파형을 멍하니 응시했다.


10월 24일

사고가 발생했다.

아니, 이걸 사고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오후 2시경, '원음'을 반복 재생하던 스피커가 갑자기 고음의 노이즈를 뱉어냈다.

시스템 오류였다.

하지만 아무도 스피커를 끄려 하지 않았다.

나와 최 교수, 민지, 그리고 막내 연구원인 준호까지. 우리는 홀린 듯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소리를 냈다고 확신했다.

고막이 아닌, 뇌의 전두엽을 직접 긁는 듯한 감각.

준호의 입 모양은 '아'도 '어'도 아니었다.

턱이 기괴할 정도로 아래로 빠져 있었고, 혀는 입천장 안쪽 깊숙한 곳, 연구개 뒤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준호가 뒤를 돌아 우리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없었다.

대신 지독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마치 우리를, 좁은 어항 속에 갇혀 벽에 머리를 찧고 있는 물고기를 보듯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명찰을 떼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연구원 박준호'라고 적힌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향해 그 기괴한 입 모양을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박준호'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박준호. 박준호. 그 세 글자가 저 사람을 지칭하는 게 맞나?

저렇게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숨 쉬는 고깃덩어리를 고작 세 글자로 묶어두는 게 가능한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10월 27일

연구실은 이제 도서관보다 조용하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보고서를 쓰지 않는다.

최 교수는 하루 종일 벽을 보고 서 있다.

벽지의 미세한 패턴을 손톱으로 긁으며, 가끔 그 '원음'과 비슷한 소리를 목 울림만으로 낸다.

그그극. 끄르르.

민지는 거울을 가져다 놓고 자신의 혀를 관찰한다.

그녀의 혀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길어 보인다.

아니, 혀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혀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녀는 혀끝을 자유자재로 접어 목구멍을 막았다가 열며, 공기의 흐름을 조절한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내게 뜻을 전했다.

텔레파시 같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가 낸 미세한 숨소리와 눈빛의 각도, 손가락의 떨림이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정보가 내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껍질. 벗겨. 시끄러운. 글자들. 좁아. 여기는. 너무. 좁아.]

나는 공포에 질려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 평범한 인사가 너무나 역겹게 들렸다.

'안녕'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텅 비어 있었다.

그 단어 안에는 상대방에 대한 안부도, 나의 감정도, 지금의 시간적 상황도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그저 껍데기뿐인 소리.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위액과 함께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10월 29일

나는 귀마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아니,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다.

다만 '언어'라는 구속복을 벗어던진 인간이다.

최 교수는 오늘 아침, 자신의 저서인 <언어의 기원> 책들을 모두 찢어 바닥에 뿌렸다.

종이 조각들이 눈처럼 쌓였다.

준호와 민지는 그 위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화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턱을 기괴하게 빼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진동으로.

그 대화의 정보량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단 1초 동안 주고받는 눈빛과 진동 속에서, 오늘 날씨의 습도, 서로의 혈류량, 건물의 미세한 진동, 그리고 10년 전의 기억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현실은 내가 보는 현실과 다르다.

내가 보는 책상은 '책상'이라는 단어에 갇힌 나무토막이다.

그들이 보는 책상은 수천 년 된 나무의 시간, 톱날의 진동, 니스 칠의 냄새, 분자의 떨림이 모두 살아있는 거대한 우주다.

언어가 사라지자, 세상이 본래의 무게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그 무게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제발 그만해! 무슨 짓들이야!"

나의 외침은 허공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그만해'라는 단어는 너무나 무력했다.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세 쌍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는 더 이상 흰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동공이 극도로 확장되어,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최 교수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귀마개를 빼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성대가 떨리고 있었다.

드드드드. 츠으으.

그 진동이 손끝을 타고 내 뼈를 울렸다.

순간, 머릿속에서 댐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이라는 단어가 산산조각 났다.

'의자', '컴퓨터', '사람', '나'. 모든 명사가 녹아내렸다.

눈앞의 사물들이 경계를 잃고 서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형광등 불빛이 액체처럼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고, 바닥의 타일이 솟아올라 내 발목을 감싸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시끄럽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존재를 비명을 지르며 알리고 있다.

언어는 이 비명을 가리는 침묵의 벽이었다.


10월 31일

기록을 남기는 것이 힘들다.

펜을 잡은 손이 내 손 같지 않다.

'손'이라고 쓰지만, 이것은 다섯 개의 갈래로 나뉜, 뼈와 근육과 피가 얽힌 생체 도구다.

펜은 잉크를 머금은 플라스틱 관이다. 종이는 죽은 나무의 시체다.

모든 단어가 문장을 맺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왜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우는지.

그들은 아직 언어라는 필터 없이 이 끔찍하고 압도적인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서둘러 말을 가르친다.

"이건 엄마야, 이건 맘마야."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제 투여다. 아이의 감각을 단어 속에 가두어 진정시키는 과정이다.

연구실의 동료들은 이제 옷을 입지 않는다.

섬유의 감촉조차 그들에겐 너무나 방대한 정보일 테니까.

그들은 구석에 뭉쳐서 웅크리고 있다.

마치 자궁 속의 태아처럼.

하지만 그들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들은 이제 신(神)과 같은 시야를 가졌을까, 아니면 짐승으로 돌아간 것일까.

조금 전, 민지가 내게 다가와 입을 벌렸다.

그녀의 혀가... 혀가 없어 보였다.

아니, 목구멍이 너무 넓어서 혀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내게 말했다.

이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뱉어. 너의. 혀를. 뱉어. 그러면. 다. 보여.]


11월 2일 (추정)

글자가. 도망간다.
이 르 ㅁ. 김 선 우. 아 니 다.
나 는. 보 는. 자.
소 리 가. 보 인 다.
어 둠 이. 만 져 진 다.

최 교 수 가. 벽 을. 통 과 하 려. 한 다.
아 니. 통 과 했 다.
벽 은. 단 단 하 지. 않 다.
단 단 하 다 는. 것 은. 단 어 일. 뿐.
원 자 와. 원 자. 사 이 는. 비 어 있 다.
그 가. 녹 아 든 다.
시 멘 트. 속 으 로.
아 름 답 다.

나 도. 가 야 한 다.
이. 좁 은. 종 이. 위 에. 있 을. 수. 없 다.
입 안 이. 꽉. 찼 다.
혀 가. 방 해 된 다.
말 을. 버 린 다.

(이후의 페이지는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패턴과, 펜을 강하게 눌러 종이가 찢어진 자국만이 가득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구석에 아주 작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남아 있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말이. 우리를. 찢어놓았다.




***







경고: 본 보고서를 읽은 후, 평소에 쓰던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사물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그 사물의 '본질'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즉시 귀를 막고 아무 책이나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언어라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벽의 틈새가 넓어 보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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