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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문학자가 아니다.
그저 고대 셈족 언어를 연구하는, 대학 강단에도 서지 못한 시간강사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페르미 역설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도 끔찍한 답을 알고 있다.
"우주에는 왜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가?"
사람들은 우주가 너무 넓어서, 혹은 문명이 고도화되면 자멸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진실은 훨씬 단순하고 비참하다.
파티는 끝났고, 손님들은 모두 떠났으며, 우리는 청소부가 오기 전 텅 빈 홀에 남겨진 먼지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사해 사본 조각 때문이었다.
기존의 '이사야서'나 '하박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요한의 묵시록'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탄소 연대 측정 결과는 기원전 2세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문법이었다.
그것은 '예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이었다.
그 낡은 양피지 위에는 '일어날 것이다'라는 미래 시제가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모든 문장은 완벽한 과거 완료형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렸었다. 그리고 세상의 나라는 우리 주의 나라가 되었었다.]
나는 번역하던 펜을 놓쳤다.
만약, 정말 만약에.
우리가 기다리는 종말이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까마득한 과거에 이미 완료된 사건이라면?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8월의 서울은 끓어오르고 있었다.
기상청은 매년 "관측 사상 최고의 폭염"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후 위기라고 부른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희망을 건다.
하지만 고문서의 해석은 다르다.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우리는 지금 '진행 중'인 재앙을 겪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쏟아진 대접의 결과물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양은 수천 년 전에 이미 권세를 받았고, 지금의 이 살인적인 더위는 재앙의 전조가 아니라,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열(殘熱)일 뿐이다.
오븐은 꺼졌지만, 내부는 여전히 뜨거운 것처럼.
나는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샀다.
뉴스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수돗물과,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불안해했지만, 나는 그 불안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3분의 1과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우리가 마시는 물이 오염된 건 현대 산업화의 부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쓴 쑥'이 떨어져 망가진 물을, 과학이라는 필터로 간신히 걸러 마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마실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마시며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
지하철을 탔다.
출근 시간의 2호선은 지옥철이라는 별명답게 사람들로 빽빽했다.
하지만 정말 소름 끼치는 것은 밀도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두가 오른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우리는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 이것으로 물건을 사고, 이것으로 신분을 증명하며, 이것으로 소통한다.
[그가 모든 자...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과거의 사람들은 '짐승의 표'가 바코드나 베리칩 같은 형태로 강제 주입될 거라며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들'은 훨씬 세련된 방법을 썼다.
강제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아주 기꺼이 그것을 오른손에 쥐게 만들었다.
이마의 표는 무엇일까.
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거북목 증후군으로 인해 앞으로 툭 튀어나온 머리.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찌푸려진 미간.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한 눈빛.
우리의 뇌 구조,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표식'이 된 것은 아닐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소비하는 삶.
짐승은 거대한 괴물이 아니다. 우리를 사육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 그 자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너무나도 평온하다.
***
나는 연구실로 돌아와 다시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가장 해석하기 난해했던 구절은 황충(메뚜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 구절은 불사의 저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너무나도 적나라한 현실 묘사다.
우리는 너무 오래 산다.
항생제, 인공호흡기, 튜브로 주입되는 영양식.
요양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는 의식이 없는 채로, 혹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기계에 의존해 숨만 쉬고 있는 수많은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죽음을 갈구하지만, 현대 의학은 그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어떤가.
OECD 자살률 1위. 우울증 환자 천만 시대.
정신적인 고통은 극에 달해 있다.
마치 전갈이 쏘는 듯한 고통이 뇌를 갉아먹지만, 육체는 너무나도 멀쩡하다.
약물과 치료로 '죽지는 않게' 만들어 놓은 채, 끊임없이 노동하고 소비하게 만든다.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한다는 황충.
그것은 어쩌면 우리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불균형을 의미하는 고대의 은유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조차 박탈당한 채, 유예된 형벌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역사책을 뒤져보았다.
기원전 1200년경, 청동기 문명의 대붕괴.
히타이트, 미케네, 이집트 왕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멸망하거나 쇠락했다.
기록은 끊겼고, 수백 년간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학자들은 바다 민족의 침입이나 지진, 가뭄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만약 그때가 '휴거(Rapture)'의 시기였다면?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영웅들. 반신반인들. 기적을 행하던 예언자들.
그들은 그때 모두 '올라갔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하늘로 '떠나간' 우주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경에 묘사된 그 거대한 정육면체의 성.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은 그 구조물은 선택받은 유전자를 가진 14만 4천 명의 '진짜 인류'를 태우고 지구를 떠났다.
그렇다면 남겨진 우리는?
우리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후손이다.
영성이 부족하고, 죄악에 익숙하며, 미지근하여 토해버려진 자들의 자손.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개체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날지 못하고, 기적을 행하지 못하며,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성'과 '과학'이라는 이름의, 버려진 자들끼리 만든 생존 도구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아 보내도 답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우리를 차단했다.
버리고 떠난 쓰레기장에 굳이 다시 연락할 이유가 없으니까.
***
퇴근길, 나는 홀린 듯이 동네의 작은 교회로 들어갔다.
평일 저녁의 예배당은 텅 비어 있었다.
십자가는 붉은 네온사인을 밝힌 채 강단 뒤에 걸려 있었다.
나는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다시 오리라(재림) 믿는다. 2천 년 동안 그 약속 하나를 붙들고 기다려왔다.
하지만 내 가설이 맞다면, 예수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는 '이미' 다녀갔고, 데려갈 자들을 모두 데려갔기 때문이다.
지금의 종교는 떠나간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의 노숙자 모임과 같다.
아무리 기도하고 찬송해도, 버스 노선은 폐지되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귓가에 쟁쟁했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아니, 틀렸다.
천국은 멀어졌다. 빛의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의 끝으로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차라리 지옥이라면 죄에 대한 대가라는 명분이라도 있을 것이다.
이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닌, '폐기물 처리장'이다.
혹은 주인이 이사 가고 난 뒤, 바퀴벌레와 곰팡이들만 남은 빈집이다.
우리는 그 빈집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사랑하고, 번식하며, 자신들이 이 집의 주인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회 의자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지독한 허무함 때문이었다.
내 인생의 모든 고통, 인류 역사의 모든 비극이, 어떤 거창한 신의 뜻이나 시험이 아니라, 그저 관리 소홀과 방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일어섰을 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허무함보다 배고픔이 더 실존적이었다.
나는 교회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인공 조명 때문에, 그리고 대기를 가득 메운 미세먼지 때문에.
하지만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고, 주식 시장의 그래프는 오르내렸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집어 들었다.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인, 공장에서 찍어낸 인스턴트 식품.
이것이 나의 '만나'다.
계산대 앞에 서서 익숙하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삑-'
결제가 완료되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삼각김밥의 비닐을 뜯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다.
버려진 자들의 음식치고는 꽤 괜찮은 맛이다.
그래, 세상이 묵시록 이후의 폐허라면 어떤가.
신이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면 어떤가.
이미 수천 년이 지났다. 우리는 적응했고, 진화했다.
우리는 쓰레기장 속에서 꽃을 피우는 법을 배웠고,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법을 배웠다.
주인이 없는 집이라면, 이제 이 집은 바퀴벌레의 것이다.
나는 하늘을 향해, 보이지 않는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안 돌아올 거면 신경 꺼. 우리끼리 잘 살고 있으니까."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웅장한 나팔 소리보다, 이 시끄러운 전자음이 내게는 더 구원처럼 들렸다.
지하철역 입구로 걸어가는 내 등 뒤로, 붉은 달이 떴다.
성경은 달이 피같이 변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 밤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이다. 덕분에 달은 핏빛으로 예쁘게 빛나고 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묵시록이 끝난 세상에서도, 월급날은 돌아오니까.
이것이 나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후일담이다.
[부록: 연구 노트 K-12 파쇄본 복구 내용 중]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기도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다. 대신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고 멸종을 유예했는지를.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 생존 투쟁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후 내용은 커피 얼룩으로 인해 판독 불가)
- 선택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