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에 어떤 여자가 갑자기 툭 던지듯 말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말투는 이상하리만치 단호했지만,
대놓고 무시하긴 뭐하고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 대충 웃으며 넘겼다.
“평균값이면, 뭐 특별할 건 없겠네요.”
그녀는 한참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죠. 당신이 어느 쪽으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전 세계가 그만큼 따라갈거에요.”
계속 듣고 있으려니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 커피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묘하게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몇 주 뒤, 이상한 징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야근하는 날이면, 다음 날 뉴스에 ‘글로벌 경제 지표 하락’이라는 헤드라인이 떴다.
퇴근 후 치킨을 시켜 먹으면, ‘닭고기 소비 급증’이란 기사가 따라 나왔다.
...에이, 우연이겠지.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확인해보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양치질을 하려다 말고 그냥 출근했다.
그날 오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구강 내에서 변종 세균이 발견되었다”는 속보를 발표했다.
또 어느 날인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잣말로 말했다.
“올해 안에 전쟁 하나는 나겠네.”
이틀 뒤, 유럽과 중동의 국경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속에서 쿵쾅거리는 걸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아무 행동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무심코 짜증을 내면, 팀원이 사직서를 내고 나갔다.
식당에서 밥을 남기면, 곡물 가격이 치솟는 뉴스를 접했다.
늦은 밤, “죽고 싶다”는 말을 무심코 중얼거렸더니,
그다음 날, 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 집단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게 수 개월이 지난 지금은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외출도 최소화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내가 하는 작은 말과 행동 하나가 실제로 세상의 변수로 작용한다면,
이건 단순한 공포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하기조차 힘든 책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그 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삶, 버겁죠?”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부아가 치밀어 올라 물었다.
“왜 하필 나였습니까?”
그녀는 그때처럼 툭 던지듯 답했다.
“원래 세상은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죠.
하지만 당신이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할 때마다, 그 가능성들이 하나로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마치 세계가 당신에게 맞춰 재정렬되는 것처럼요.”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럼, 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같이 무너집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은 계속 굴러가겠죠. 하지만 방향성과 기준을 잃은 상태로요. 당신 없는 세계는 결국 불안정하게 흔들리거나, 멈춰버릴 수도 있어요.”
“당신은 대체 뭐죠?”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관찰자요. 그런 셈이죠.”
지금 나는 조용히 이 방에 앉아 있다.
문은 잠갔고, 핸드폰은 꺼뒀다.
TV도 라디오도 모두 껐다.
그저 숨만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상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새로운 병에 걸린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름 모를 증상, 이유 없는 우울감, 설명되지 않는 무기력.
학자들은 이 현상을 ‘의지 결핍 증후군’이라 불렀다.
나 하나가 조용히 멈추었을 뿐인데,
세상도 점점 멈춰가고 있었다.
이건 나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숨도 함께 멈추게 만드는 것.
거대한 세계를 짊어지기엔, 인간 하나의 어깨는 너무 좁았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napolitan/3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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