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는 교회] 하늘의 태양이 아닐지라도! 밤 하늘에 달과 별이 못될지라도!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실 때 어떤 조건을 요구하실까요? 우리의 능력? 재능? 스펙? 학벌? 좋은 결과 맺는 것? 하나님은 이런 것들 대신에 우리의 '최선'을 요구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런 최선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겨주실 때에 우리 자신의 무능함이나 부족함으로 안된다고!
열심히 살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비켜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은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가? 도와 주고 싶은가? 투자 하고 싶은가? 길을 열어주고 싶은가? 전혀 아닐 것이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인생아, 고맙다! 이지성] 중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접받고자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문] 아침마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눈을 뜨고 가슴에 열정을 품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하루에 한 번쯤은 넓은 하늘과 푸른 고향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소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보낼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하소서! 작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영적 간음인 '우상숭배'와 육적 간음인 '성적인 타락'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죄들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이웃들과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당신께 돌아오도록 수많은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는 주로 몸이 약해서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무리와 떨어져 있는 연약한 동물을 사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이런 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절대로 교회공동체와 성도들과 떨어져서 고립된 신앙
다행스러운건 외로운 게 당신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잘 사는 사람도, 잘 나가는 사람도, 같이 있는 사람도, 혼자 있는 사람도, 우리는 모두 외롭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심약해지듯 외로움 앞에선 모두가 평등합니다. (조진국의' 외로움의 온도') 외로움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십시요.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때 '머리 둘 곳도 없다'며
1992년도에 비무장지대인 강원도 저진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넓은 들판 한 가운데 양쪽으로 빨간 깃발을 꽂아, 좁은 길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지뢰밭이니 좁은 길로만 다니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루는 멧돼지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데 지뢰가 펑하고 터져, 멧돼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시면
간섭과 통제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마치 열차가 선로가 아닌 곳을 달리면 탈선인 것처럼! 배가 항로를 벗어나면 표류하는 것처럼! 자유란 일정한 틀안에서 인정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간섭 아래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세상에서 가장 살기 쉬운 방법이 바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쉽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방법은 또한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기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싶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과 우리
물고기는 물 속에 있을 때,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물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물에 걸려, 땅 위에 올라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때가 자유로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의 품에 있을 때는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다가! 그 품을 떠나 세상에서 핍
혈관 질환 중에 '동맥경화'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 현상은 피가 혈관을 타고 잘 흘러가야 하는데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같은 이물질이 혈관 벽에 쌓여서 피가 잘 흘러가지 못해 결국에는 혈관이 터져버려 뇌출혈 등 더 큰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웃과 지체들에게
요즘 많은 신학생들이 먹고 사는 길이 막막해져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측은하고 안타까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랬을까... 그러나 반면에 지금 이 순간에도 몇 명 모이지 않지만! 생활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 주신 불타는 사명감으로 몇 십년 째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선후배 목사님들을 생각해보니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을 위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즉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말에 속아서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닌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지상낙원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 등골에 땀이 흐를 정도로 고생해야만 겨우 먹을 것을 얻을 정도로 비참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자기들
'기회주의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런 사람은 모든 결정의 기준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즉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자기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따져서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거부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인생은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유익과 욕심을 따라 넓은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의 신앙도 이처럼 매순간 결단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단인가? 내가 만족하는 결단인가?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결단하는가? 사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가? 예수님을 죽이려는 군중들의
우상은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풍성한 삶을 위하여 자기 스스로 만든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일지라도 자기를 위해 섬기면 하나님조차도 우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의 행동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실패'의 뜻은 '끝났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자'입니다. '자살'의 뜻은 '죽자'가 아니라 '살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방법'인 것입니다. 누가 나를 '욕'했는데 나는 그를 '축복'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수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이 때가 바로! 예수님이 실패의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다시 시작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사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에 의해 모든 일들이 계획되고 추진되고 성취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성장하고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도록 당신이 기뻐하시는 삶을
'회복'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신 이유도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교만의 죄로 인해 무너졌던 하나님과의 관계!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깨어졌던 지체들과의 관계를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것, 이것이 '회복'이며, '
삶의 목적과 정체성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자신이 삶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정체성을 잊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