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는 교회] 하늘의 태양이 아닐지라도! 밤 하늘에 달과 별이 못될지라도!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게 하소서♡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입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기도하고 있다면, 그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따뜻한 시간일 것입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일 것입니다. 어느 날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즉 댓가를 바라고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생각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고자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어 "로또에 당첨만 되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방심과 낙심' 이 두 가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맺었을 때에는 우리는 얼마든지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방심'의 단계까지 나가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기 위해서 실패를 경험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는 일을
우리 안에 믿음이 없거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불안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과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미움인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면, 다시 말해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고 살아가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당신의 사명보다 우리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드리길 더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마음만 알아들여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며 포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리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주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질문을 드려야 합니다. 가령 "하나님 제가 그 일을 어떻게 해야할까요?"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그 일을 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Yes!"라는 대답이 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드려야하
휴대폰을 손에 들고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휴대폰을 찾은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휴일날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지각한 줄 알고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간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의 대부분은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서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
요즘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비해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아서인지 너무 귀하게만 키우려다 보니, 자녀의 잘못을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의 잘못을 숨겨주고 덮어주고 때로는 편을 들어주는 잘못된 훈육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잘못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권력과 재물이 많은 쪽이 승승 장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쪽수가 많고 힘과 권력을 거머쥐고 있으며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전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쪽이 마지막에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
우리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건에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렇게 찾은 하나님의 뜻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으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반대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허물를 보고 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를 먼저 뺀 후에 형제의 눈 속에 티를 얘기해라!" 이 말씀의 의미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들보가 부끄러워서라도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깨끗이하는, 비누같은 삶을 살아야합니다.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깨끗이 닦는, 걸레같은 삶을 살아야합니다. 더러워질지라도... 우리는 어둔 곳을 환히 비추는, 빛같은 삶을 살아야합니다. 고난으로 힘들지라도... 우리는 부패한 곳에 뿌려지는, 소금이되어야 합니다. 상처가 따갑고 아플지라도... 그러하면 하나님
세상은 가면 갈수록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애매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은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고 하면 틀렸다고 받아들이며 반대로 아무리 틀린 것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람들의 여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미봉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잘못된 일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고친 문제점은 근본적인 원인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반복적으로 짓지 않기 위해서는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 죄를 짓는 근본적
교회의 사명은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앞서서 교회는 먼저!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하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곤경과 위기에 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즉 평소에 우리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베풀었는가를 보시고 주님도 우리를 도우실지 돕지 않으실지를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우리가 도와주면 우리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는 것은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이 땅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갚아주실까요? 원금만 갚아주실까요? 아닙니다! 엄청난 이자와 함께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도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실 때 어떤 조건을 요구하실까요? 우리의 능력? 재능? 스펙? 학벌? 좋은 결과 맺는 것? 하나님은 이런 것들 대신에 우리의 '최선'을 요구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런 최선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겨주실 때에 우리 자신의 무능함이나 부족함으로 안된다고!
열심히 살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비켜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은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가? 도와 주고 싶은가? 투자 하고 싶은가? 길을 열어주고 싶은가? 전혀 아닐 것이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인생아, 고맙다! 이지성] 중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접받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