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두산 베어스를 떠났다.
김재호. 그는 그 이름만으로도 베어스 유격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대표한다.
단일 시즌만 놓고 본다면 김민호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역대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에는 김재호가 단연 독보적이다.
베어스에는 현재까지 두 개의 영구 결번이 있다. 故 김영신과 불사조 박철순.
특히 박철순은 22연승과 시즌 24승, 그리고 팀의 원년 우승을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이후 많은 스타들이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지만,
원년팀 치고는 생각보다 은퇴식까지 치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원클럽맨만이 누릴 수 있는 찬란한 마무리
진정한 은퇴식은 ‘원클럽맨’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재호의 은퇴식은 베어스 역사상 가장 눈부신 순간 중 하나였다.
장원진, 오재원, 김재호
이들이야말로 온전히 한 팀에서만 뛰며 커리어를 마감한 ‘순수 혈통’들이다.
물론 홍성흔 또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지만,
롯데에서의 FA 4년은 그의 커리어를 원클럽맨의 반열에서 살짝 비켜서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존재는 ‘두목곰’ 김동주다.
그는 분명히 원팀맨이었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팬들에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재원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조건과 그 상징성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단순하지 않다.
한 팀에서 오랜 기간 헌신하고,
타 구단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과 애사심,
그리고 사생활에서도 팬들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는 모범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김재호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은퇴식은 선수 개인의 명예일 뿐만 아니라,
팀의 역사이자 후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날 은퇴식이 열린 경기의 상대는 KT 위즈였고,
KT에는 두산에서 FA로 이적한 허경민이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은퇴식의 의미는 더욱 상징적이었다.
허경민은 과거 김현수와 양의지가 팀을 떠날 당시,
“형들 가지 마세요”라며 눈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FA 재계약 시기에는 “저 어디 안 갑니다”
라고 단언하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FA 자격을 얻은 뒤 두산을 떠나 KT로 이적했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의 선택은 냉정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말과 행동의 일치,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프로 선수로서 반드시 따져야 할 덕목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두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지킨 김재호가 더 크게 평가받는 이유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두산에 대한 애정을 증명한 인물이었다.
전통은 성적보다 오래간다
김재호가 향후 지도자로 복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후배는 선배의 길을 본받는 전통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베어스는 김인식 감독 시절,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믿음의 야구를 펼쳤고,
김경문 감독은 뚝심의 야구로 팀을 이끌었다.
김태형 감독은 이 두 전통을 융합해 자신만의 리더십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두산스러움’이 무엇인지 체화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베어스는 다르다. 전통이 무너졌다.
타팀들의 암흑기에서 배운 교훈을 보자면
우리가 어이없게도 그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성적에 조급해진 프런트는 외부 인사를 무분별하게 영입하고,
실익 없는 트레이드와 FA에 수백억을 쏟아붓고 있다.
감독 선임에조차 사심이 개입되고, 시스템은 갈수록 흔들린다.
현재 FA선수들에게 435억 원을 그리고 외국인 선수들에게 거의 풀배팅을
투자했지만, 결과는 현재 9위.
이는 단순히 감독의 문제가 아니다.
프런트의 운영 철학과 구단주의 가치관 부재가 만든 결과다.
구단이 해야 할 일,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
베어스는 오랜 시간 좋은 시스템을 가진 구단이었다.
1~2순위 지명에서 멀어졌어도,
자체 육성과 팀 컬러 유지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김재호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뒤를 이을 선수를 키우고,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프랜차이즈 스타가 남긴 정신을 잇는 길이며, 구단이 반드시 지켜야 할 본분이다.
팬들은 은퇴식보다 더 큰 감동을 ‘전통의 계승’에서 느낀다.
김재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후배들이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구단의 몫이다.
전통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베어스는 베어스다울 때 가장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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