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살롬으로 표기되고 있다.다윗의 셋째 아들로서 그의 어머니는 갈릴리 호수 북동부의 작은 지역인 그술의 왕 달매의 딸 마아가였다(삼하 3:3 ; 대상 3:2).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아름답고 정숙한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다윗의 맏아들이며 압살롬의 이복 형인 암논이 그녀를 강간하였다(삼하 13:1-19).
다윗은 이 일을 알고 노발대발했지만, 암논에게 어떠한 징벌도 내리지않았다(13:21).
이후 압살롬은 암논을 미워하여 그와는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후 압살롬은 암논을 궤계에 의하여 자기 집으로 초대한 후 살해해 버렸 13:22-29).
그는 즉시 그술의 외할아버지에게 도망가서 3년을 지냈는데(13:37-38), 시간이 지나자 다윗 왕은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을 거의 잊고 그 마음은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있었다(13:39).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요압의 주선에 의하여 압살롬은 다윗의 허락하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옷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2년 후에야 압살롬은 그 일에 대하여 용서를 받고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14장).
성경은, 이스라엘에서 압살롬만큼 미남자로서 인기를 모은 사람도 없었다고 기록한다(삼하 14:25).
또한 그에게는 세 아들과 여동생의 이름을 따라 지은 다말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27절).
삼하 15장에는, 그가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왕의 자리를 노리며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백성들의 인기를 모아가는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그는 군대를 고용하고, 백성들의 재판을 도맡아서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했을 뿐아니라, 가장된 겸손으로 그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15:1-6).
성경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6절).
그로부터 4년 후(어떤 사본에서는 40년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압살롬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며, 다윗의 통치 초기에 유다의 수도였던 헤브론(삼상 3:2-3)에서 모사 아히도벨을 비롯한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그 세력은 점점 커졌으며 따르는 자도 계속적으로 불어났다(15:7-12).
이때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기울어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삼상 15:13).
이 사건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게된 다윗은 즉시 궁성 예루살렘을 버리고 한 무리와 함께 감람산 길을 거쳐 요단강을 건넜으며, 마하나임으로 피신하였다. 그가 천연의 요새인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간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아마 다윗은 어려서부터 들에서 양을 쳤으며, 커서도 항상 넓은 지역에서 싸운 야전의 명수였기 때문에 광야로 나간 듯하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군대를 재편성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 한 듯하다. 이때 다윗이 가장 두려워한 인물이 이전에 자신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었다. 당시 아히도벨의 조언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아서 다윗은 물론 압살롬도 그의 모든 조언에 전적으로 의지했다(16:23).
다윗은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주는 조언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15:31).
그리고는 자신의 신실한 친구이며 모사였던 후새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압살롬의 반역에 거짓 가담케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방해하도록 하였다(32-37절).
그때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이 많은 무리를 모으기 전에 즉시 그를 기습 공격하도록 조언하였다(삼하 17:1-4).
중요한 문제인지라 압살롬은 후새의 조언도듣고 싶었다. 후새는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다윗의 전쟁 경험과 그의 주위에 있는 장군들의 용맹스러움으로 인해 기습하다가 오히려 매복에 역습당함으로써 첫 싸움에 조금이라도 패배한다면 군사들의 실추된 사기를 만 회하기 힘들다고 아히도벨의 조언을 반박했다. 그리고는 왕에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모아 막강한 군대를 조직하고 왕이 직접 그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17:5-13).
그러자 압살롬과 모든 주위 사람들은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낫다고 하였다. 성경은, 이러한 결정이 압살롬을 망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기록했다(14절).
아히도벨은 자기의 제안이 좌절된 것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와 목매달아 자살하고 만다(23절).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전 군대를 이끌고 아마사를 총사령관으로하여 길르앗에 진을 쳤으며, 다윗의 군대는 마하나임 성을 나와서 들로 나왔다. 에브라임 숲속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압살롬의 군대는 대패하고 그날 20,000명이 전사했으며, 압살롬도 다윗의 장군 요압에 의하여 주살되고 반란은평정되었(17:24-18:18).
그러나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듣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가슴을 치며 성문 누각에 올라가 울부짖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아들아!"(33절).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왕좌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했던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의 심각성은, 다윗 시대에 이미 왕국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깰 분열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명백히 다윗이 통치를 잘못한 것에 기인한다. 다윗은 유다 지파로서 북쪽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압살롬은 쉽게 그 지파들의 마음을 다윗으로부터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우려된 것은 이스라엘의 국민의식이었다. 그들은 쉽게 정치적 음모에 놀아날만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의식이 박약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치 방식은 오히려 솔로몬에게 와서 더욱 가혹하게 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통합은 간신히 명목만 유지 될 뿐 그 분열의 명분만을 찾고 있었다. 그 후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이 들어 서자마자 그러한 예견은 현실화되어 나타났다(왕상 12:1-19).
구약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메시야 강림의 예언이 명백해지면 명백해진만큼 더욱더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의 황금기인 다윗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다윗의 성격적 결함을 동시에 묘사하고있다. 그럼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다윗보다 더 위대한 임금을 열망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참고 문헌C. Conroy, Absalom, Absalom! Analecta biblica 81(Rome: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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