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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공복 산책 | 조온윤






걸어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가지 대답을 만나고 싶었지

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
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글쎄, 이곳은 보리수 아래가 아니고
이곳은 사과나무 아래가 아니어서 사과가
내 발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허기가 생각을 이길 때
나는 텅 빈 몸을 채우러 외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리수 대신 천막으로 그늘을 치고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식도까지 탑을 쌓아 올리는 대식가들이
헉헉대며 먼저 수건을 던질 때까지

고작 허기 따위에 지고 싶지 않은 건가?
링 위에 선 깡마른 복서가 갈비뼈를 드러내며
두 팔을 벌릴 때

앙상한 것들은 왜 자꾸 단단해지는가
추운 계절과 싸우기 위해
가로수가 가지를 흔들며 계체량을 줄여갈 때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나무 위에서 뱀이 속삭이는 듯한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

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
삶이 아니면 배고픈 일이 없고
삶이 아니면 싸우는 일이 없고
삶이 아니면 슬퍼하는 일 하나 없다
그런데 왜 아직도 대답을 내놓지 않는 거지?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지만 글쎄,
글쎄,
오래 인간으로 살다가
환생의 문 앞에 서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혹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고작 배곯는 게 두려워 떠나진 않겠지
흘리는 눈물만큼 내 몸도 말라갈까 두려워서
떠나진 않겠지
검불처럼 가벼워진 빈속으로 오늘은 많이도 걸었구나

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 걸어오는 사람들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오늘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나무들

살아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 살아가다
만나게 되는 아주아주 단순한 풍경

내 지친 마음은
거기에 가 쉬어도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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