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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거성아파트 108동의 쓰레기 버리는 곳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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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 왔을 때는 모두 다 좋았습니다. 볕도 잘 들고 가격에 비해 넓은 곳이죠. 다 마음에 들었어요.



공동현관 바로 앞에 쓰레기 모으는 곳이 있는 것도 좋았죠. 저번 집은 한참을 걸어가야 했거든요.



그러다 며칠 정도 살면서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닫게 됐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였습니다.



이사 온 날에는 종이 박스가 몇 개 쌓여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언젠가 치워지고 나서는 제가 버린 쓰레기만이 그곳에 쌓여 있었어요. 어제 버렸던 게 거기 그대로 있었죠. 제가 뭔가를 잘못 알았나 싶어서 경비실에 여기가 맞냐고 물어봐도 다들 맞다고만 대답했습니다. 왜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거냐고 물었지만, 경비원들은 원래 이곳 사람들이 쓰레기를 잘 안 버린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해왔어요. 뭔가 숨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사람들이 있었지만 쓰레기를 어디 버리냐고 해도 딴소리만 해댔지요.



그러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집에 들어가려는데 어떤 사람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가는 게 보였습니다. 물론 쓰레기 모으는 곳을 지나쳐서요. 저는 그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아파트 동들을 지나갔습니다. 단지가 산 위에 있었는데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죠. 아파트 단지가 이토록 거대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위쪽에 있는 건물들이 이토록 낡았는지도요. 올라갈수록 건물들은 칠이 벗겨지고, 먼지가 끼고, 엄청나게 오래된 아파트들처럼 보였습니다. 공사를 하기 어려워서 그런 건가 싶었어요.




거의 오 분은 걸은 것 같았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바로 앞에 있는데 왜 이렇게 먼 길을 가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어요. 더 이상한 것은 똑같이 쓰레기를 짊어진 사람들이 다른 아파트에서부터 나와서 우리와 같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단지 전체가 버리는 장소가 하나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설마 정상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갑자기 엄청난 악취가 코에 밀려와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습니다.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가까워지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익숙한지 악취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더군요.



마침내 등산이 끝난 건 아파트 단지의 맨 위에 있는 동에 사람들이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동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그곳의 쓰레기 모으는 곳을 확인했지만, 이곳 역시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쓰레기들을 다 들고 아파트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군요.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대충 자연스럽게 형성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줄은 위층 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또 한참을 거기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202호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문에 온갖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언뜻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은 바로 거기였습니다. 문 안으로 보이는 집안의 모습은 확신컨대, 사람이 살지 않은지 한참이 된 폐허였습니다. 아날로그 TV와 먼지가 잔뜩 낀 노란 장판, 빛이 바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는 가족 사진 등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물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안에서 나는 것은 분명한데, 눈에는 그런 소리가 날 만한 물건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던 저는 이상한 걸 알게 되었는데, 집에 들어간 사람들은 한 명씩 순서를 기다려 안방 쪽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다가, 잠시 뒤 물 흐르는 소리가 잠시 격해지고 나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어딘가에 그들의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을 것이고 물 흐르는 소리는 그와 관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그게 뭔지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악취가 너무 심해 도무지 들어갈 수 없었던 데다가, 마침 그곳에 와 있던 옆집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제지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아서 안 된다더군요.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대체 저 안에 무엇이 있는 건지 물어보았지만, 옆집 사람은 단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아파트에 있었다라는 말만 할 뿐 대체 뭐가 있는 건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헛구역질을 하는 나를 아파트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단지 나가기 직전, 안방에서 나오는 한 사람이 얼굴을 감싼 채 미친 듯이 흔들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지만 크게 놀라는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으레 있는 사고를 대처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 그에게 뭐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이 아니라 숨으로 마시세요, 목이 아니라 숨으로 마시세요. 그 사람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날 끌어낸 옆집 사람은 내가 이 아파트의 물을 적어도 일 년은 마신 뒤에야 저기에 익숙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비밀이 너무도 궁금했던 저는 처음에는 그러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부터, 물을 마실 때마다 뭔가 메슥거리는 느낌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계속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이사짐을 빼 텅 빈 내 옛날 집에 가는데, 그곳 안방 화장실에 변기가 뜯어져 있습니다. 뜯어진 자리에는 사각형의 큰 구멍이 있고, 그 아래에서 새까만 물이, 가공할 악취를 내뿜으며,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음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얽어맨 채 산 아래로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그 물이 어디에 도착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그 물을 더 가까운 데서 들여다봅니다.




끝내 나는 최근 그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이제 이상한 느낌이나 꿈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번 달 17일에 관리비를 내고 나면 그 아파트 단지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납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뭔가 불법투기가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모쪼록 공무원 분들께서 꼭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바랍니다.







-3월 19일, 제보자 A씨의 실종 신고 접수.



-3월 27일, A씨가 증언한 "불법 쓰레기 매립지"에 조사원 파견.



-4월 2일, 거성아파트 철거 작업 시작.



-4월 3일, 추가 파견.


-4월 4일, 추가 파견.


-4월 5일, 추가 파견. 군 투입.


-4월 6일, 사망자 집계. 아직 확인 중.



-4월 9일, 거성종합건설 본사 건물 근처 하수구에서 악취 신고 접수. 확인 결과 복부에 수많은 쓰레기와 성분 불명의 검은 물이 들어찬 신원 미상의 시신들 열네 구를 발견. 회사는 관계를 부정 중.


출처 :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3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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