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정말 많이 눌렸지만 그중에서 손에 꼽는 3가지가 있는데, 이건 그 중 두번째, 세번째 경험이야.
스무살 초반이었는데, 그때 정신이 많이 불안정했어. 술도 되게 좋아하고.. 그래서 보통 집에서 라면정도만 끓여먹었고 나가서 안주로 밥 먹으면 되니까 집에 먹을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때도 낮까지 자취방에서 자고 있었어. 자고 있으면 현관문이 발끝으로 보이는 구조였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깬거야. 절대 꿈이라고 생각을 안했던게 낮이어서 현관문 틈으로 빛이 쫙 들어오는게 확실하게 보였거든.
너무 놀라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몸이 안움직이길래 가위구나, 싶었어. 속으로 저건 백퍼센트 도둑이다 이제 난 큰일났다 이러면서 발끝으로 보이는 현관문을 보고 있었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뭔가는 문을 닫더니 바로 앞에 있는 주방으로 가더라고. 그러고 찬장을 여는 소리가 들려. 주방은 누워있으면 반투명 유리문을 통해 보였거든? 거기로 희미하게 보이는 형태랑 그 뭔가가 내는 소리만 들리는거야. 그리고 이어서 찬장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한참 그러더니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집엔 먹을게 아무것도 없네.
그랬어. 남자 목소리로.. 그거 듣고 바로 소리지르면서 일어났는데 가위였더라고.
마지막 가위썰은 내 할머니집이 배경이야. 할머니집은 정말 오래된 주택이야. 듣기로는 할아버지가 땅에다 집을 지었고, 그 집을 허물고 집만 새로 지었다고 했어. 그래서 할머니가 살고있는 주택 건물 하나만 그나마 새거고, 마당이라던가 마당 한쪽에 푸세식 화장실이라던가 그런건 다 옛것 그대로 있어.
거기서 명절에 놀러갔다가 티비를 보면서 낮잠을 잤지. 그러다 가위에 눌린거야. 윗 어른들은 전부 성묘였나? 하여튼 집을 비우셨고 집엔 나랑 큰언니만 있었어. 가위에 눌린걸 알고 눈을 떠서 언니를 찾았는데 저 앞에서 티비를 보는게 보이더라고. 그때 언니가 보던 프로그램도 기억나. 무한도전이었어.
언니, 언니 하고 부르는데 불러질 리가 없지 당연히. 몇번 시도하다가 지쳐서 그냥 힘을 뺐는데 뭐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 앞에 언니도 있어서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불어오는 바람도 살랑살랑 좋고 뭐… 근데 그때였어.
나는 엄마를 닮아서 만세를 하고 자는 잠버릇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러고 자고 있었거든. 만세 한 내 팔목을 누가 잡는거야. 새끼손가락부터 하나씩 눌러서 세게 잡더라고. 근데 그 손이 엄청 차갑고 딱딱하고 축축했어. 내가 친구들한테 이 썰을 들려줄때마다 말하는 표현이, 마네킹 손을 차가운 물에다 오래 담궜다 뺀 것 같은 손이었다고 말해. 딱 그런 느낌이었어.
새끼손가락부터 시작해서 한 손가락씩 꾹꾹 눌러담듯 내 팔목을 잡은 그 손이 너무 불편하고 무서워서, 아까 내가 만세를 하고 자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당연히 손을 내리려고 노력했지. 가위에 눌리니까 몸은 맘대로 안움직여지고, 손을 내리는것도 힘들어서 낑낑거리다가 간신히 손을 내리는데 성공하기 시작했는데 내 팔목을 잡은 그 손이 갑자기 손톱을 세우더라고.
팔목이 손톱으로 긁히면서 내리면서 빼는데 너무너무 아팠어. 그래도 간신히 낑낑거리면서 뺐는데 그 손이 다시 내 팔목을 한손가락씩 천천히 눌러 잡더라. 그럼 나는 또 빼려고 노력하고, 그 손은 손톱을 세우고…
적어도 10번은 반복한 것 같아. 미쳐버리기 직전에 간신히 소리를 지르면서 가위에서 깼는데, 언니한테 뒤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냐 왜 안깨웠냐 묻는 와중에 티비를 봤더니 진짜 무한도전이 나오고 있더라고… 하하.. 꿈이 아니었던거지.
그러다가 좀 진정이 되고 갑자기 생각난게 있는데, 내가 그랬잖아 할머니 집이 푸세식 화장실까지 그대로 남아있을 만큼 아주 오래된 집이라고. 할머니 집 마당에 우물이 있어. 버려진지 한참 된데다가 너무 익숙해서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우물이 있었어. 내가 아까 그랬잖아, 그 손이 엄청 차갑고 축축하고 딱딱했다고..
너무 놀라서 엄마가 돌아오자마자 물어봤어. 혹시 저 우물에서 엄마가 여기 사는 동안 사고가 난 적 있냐고. 그걸 왜 물어봤냐면, 아주 오래 전에 우물을 한참 썼을 적에, 할머니 집 마당에 방만 다섯개쯤 있는 건물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사람들 세를 받았었거든. 엄마 시집 온지 얼마 안되고 나는 태어나기도 한참 전 얘기야. 엄마는 내가 사는 동안은 없었다고 갸우뚱 하는데, 그 전은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
이런 가위를 정말 수없이 겪으면서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를 보냈어.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어느 순간 스위치 끄듯이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더라. 한참 겪던 이십대 초에 무당을 사석에서 만날 일이 있었어. 무당이 그러더라고, 뭐 보이지 않냐고. 난 그때까지는 이 모든게 가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네? 하면서 뭐가 보인다는거지.. 설마 가위를 말하는건가.. 했지. 그랬더니 무당이 그랬어. 여태까지 니가 봤던것들이 다 허상은 아닐거라고. 개중 몇개는 진짜일거라고 그랬어. 그때 소름이 오소소 끼치더라. 그게 다 가위는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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