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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괴담회
일본 장기 미제사건 -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 사건 개요 -

 




 

2000년 12월 31일 오전,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자택에서 미야자와 미키오(宮沢みきお, 당시 44세, 외국계 기업 회사원), 부인 야스코(泰子, 당시 41세, 자택에서 학원 운영), 딸 니이나(にいな, 당시 8세), 아들 레이(礼, 당시 6세)가 숨져있는 것을 부인 야스코씨의 모친이 발견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야스코씨의 모친이 딸의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하여 방문했을 때, 일가족의 처참한 시체를 보게 된 것이다.

 

 

 

 

 

- 사건 현장 주변 환경 -

 



 

미야자와씨의 자택은 카미소시가야(上祖師谷) 3번지에 위치한 2층 주택으로 특이하게 바로 옆 집과 딱 붙어있는 형태로 지어진 집이었다. 이 옆집엔 부인의 모친과 언니 부부가 살고있었다.

 

당시 이 주택지는 30채정도의 집이 모여 있었지만 공원 토지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되어 다른 주민들은 이사를 간 상태였고 피해자 일가도 4개월 후 2001년 4월까지 사이타마현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택 주변은 이미 집을 허문 곳도 있어 을씨년스러웠고 밤이 되면 아주 조용했는데,발달장애를 갖고있던 아들이 괴성을 지르거나 하는 일이 잦아서 주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조금은 황량한 주변 환경에 만족했다고 한다. 다른 이웃들에 비해 늦게 이사를 하게 된 이유도 아들의 육아 문제 때문이었다고야스코씨의 언니가 증언했다.

 

 

 

 

 

 

 

 

 

- 당시 상황 -

 

 

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12월 30일 밤 11시경 집 뒤에 있는 공원의 펜스를 발받침 삼아 피해자 집 2층 목욕탕 창문으로 침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펜스 주변의 나뭇가지가 꺾여 있었으며 창문 아래 지면에서 범인의 발자국이 발견되있다. 목욕탕 창문은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풀린 상태로 지면에 떨어져 있었다.

 

 

11시경 집에서 다투는 듯한 소리를 근처 주민이 들었으며 옆집에 살던 모친과 언니 부부가 30분경 "쿵!" 하는 큰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 소리는 처음엔 피해자가 범인에게 습격당하고 계단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가 의심 했으나 경찰이 샌드백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는 아님이 판명 되었다. 3층 로프트 침실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내릴때 나는 충돌음으로 결론 났으며 범행은 11시경에서 11시 30분경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범인은 2층으로 침입, 2층 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을 목 죽인 후 2층에서의 소란을 듣고 1층에서 달려온 부친 미키오씨에게 달려들었고 미키오씨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범인과 싸웠으나 칼을 가지고 있던 범인에게 속수무책으로상반신과 하반신 모두난도질 당하며1층 계단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부러진 앞 칼날은 미키오씨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때 범인은 오른손을 자신의 칼에 의해 상당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게 된다.

 

미키오씨를 살해한 뒤 범인은 사다리를 타고 3층 로프트 방으로 올라가 자고 있던 부인과 딸을 한꺼번에 공격했으나 이미 끝이 부러지고 휘어버린 사시미칼로는 제대로 가해하기 어려워서 다시 2층의 주방으로 내려와 식칼을 찾는 사이, 경상을 입은 두 모녀는 도망치기 위해 사다리를 내려오다 다시 마주친 범인에 의해 마구잡이로 난도질 당해 2층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특히 부인의 시체는 얼굴부분을 칼로 파낸듯한 상처가있어가장 끔찍했다.

 

후에 딸의 피가 묻은 휴지가 발견되었는데, 도망간 사이 부인이 딸의 상처를 치료하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가족은 평화롭게 살던 자신의 집에서 갑자기 침입한 살인범에 의해 공포에 떨며 참혹하게 명을 다한 것이다.

 

 

 

 

 

 

 

 

 

 

 

 

- 범인의 특징 -

 

 




 

범인의 신장은 175cm 전후, 허리 둘레는 83cm 전후이며 범행시 미키오씨와의 몸싸움으로 손을 다쳐 묻은 혈액으로 A형인 것이 판명되었다. 경시청 추정 1965년에서 1985년생(사건 당시 15세~35세). 범행 방법으로 보아 대담하고 뻔뻔하며 윗옷을 벗어 가지런히 접어놓은 것으로 보아 꼼꼼한 성격으로 추정했다.

 

피해자 자택에서 수십 개의 지문이 남겨져 있었다. 지문은 소용돌이형이었으며 과거 범죄자들의 지문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전과자가 아닌 초범인 것으로판명됐다.

 

 

 

 

 

 

 

 

 

 

- 범인의 유류품 -

 




 

범인은 너무나도 많은 유류품들을 남겼지만 범인 검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1. L사이즈의 나그랑 셔츠

2. 유니클로의 L사이즈 나이론제 검은 에어텍 자켓(주머니 속에서 특정 해변의 모래와 버들잎 낙엽, 꽃가루, 애완용 새 똥 등의 흔적이 발견.)

3. 검은 돈피 털장갑 (안쪽에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A형 혈액형 흔적)

4. 녹색바탕에 빨강,주황 실선이 들어간 체크무늬 머플러 (130cm x 30cm 제조사를 알수 없는 염가품)

5. 회색 크러셔 모자

6. 흉기로 사용된 칼날 길이 21cm 회칼 (후쿠이현 제조품)

7. 무인양품의 검은 손수건 2매 (45cm x 45cm) (프랑스 기라로쉬제 Drakkar Noir 향수가 뿌려져 있고 잘 다려져 줄이 잡혀 있음)

8. 힙색 (오사카의 한 업체에서 생산)

9. 족적에서 영국 메이커 슬래진저의 280mm 테니스화(제조국은 한국)를 신은 것이 판명.

 

 

 

 

 

 

 

 

 

- 범인의 특이점 -

 

 

범인은 범행 후 자택에 있던 물건들을 사용하는 등 극히 대담하고 엽기적인 행동들을 보였는데,

 

 

1. 일가족을 살해한 뒤 피해자의 자택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던 음료와 멜론, 아이스크림 4개 가량을 꺼내어 먹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2. 범행 중에 껌을 씹고 있었다.

3. 오른손에 상처로 생긴 출혈을 자택에 있던 생리대를 이용해 막는 방법을 썼다.

4. 범행 후 자택에서 대변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변기 물을 내리지 않아 대변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시사통신의 2010년 1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대변에서 검출된 고마아에(胡麻和え, 야채에 참깨를 넣고 무친 음식)는 피해자들의 위에 있던 내용물과 식사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5. 2층 거실 소파에서 수면을 취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6. 2층 거실 소파에서 신용카드와 수첩, 은행 예금통장, 운전면허증 등 생년월일이 표시된 서류가 분류되어 있었다.

7. 찬장과 책상의 거의 모든 서랍은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열려 있었고 욕실의 욕조 안에는 영수증이나 서류, 타올, 쓰레기 등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집 안을 탐색하고 쓸모없는 물건은 욕조에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욕조에 어질러져있던 서류와 광고지들은 가위나 손으로 찢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8. 1층 서재에 있던 컴퓨터로 인터넷을 한 흔적이 발견. 인터넷 기록은 피해자의 회사 사이트와 대학 연구실 홈페이지 등이었다.

 

 

 

 

 

 

 

 

 

 

- 용의자 정보 -

 




 

사건 발각 당일 오후 5시 20분경 도부닛코역 도착 토부 열차 안에서 손에 상처를 입은 남성이 타고 있다는 목격 정보가 들어왔다. 처음엔 '반창고를 붙이고 있을 정도의 상처'로 정보가 들어왔으나 조사 본부의 추적으로 '오른손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것임이 밝혀졌다. 남성은 아사쿠사발 쾌속 열차에서 같은 역에 하차한 승객 20명 중에 한 명으로 사무실에서 역무원에게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으며 치료를 받았다. 상처의 원인을 묻자 "열차 안에서 칼을 떨어뜨려 손이 베였다"고 얘기했지만, 열차 안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은데다가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가 단순히 칼이 떨어지며 베인 정도로 생길리가 없으니 해당 남성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남성의 외형은 30세 정도의 신장 약 170cm, 말랐으나 몸집이 컸으며 녹색의 룩색을 메고 검은 다운 자켓에 청바지와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고 한다.

 

 

범인이 신고 있던 신발은 영국 브랜드 'Slazenger'로 한국에서 1998년 10월부터 2000년 11월 사이에 4530켤레를 제조, 판매했었다는 것을 알아내어 한국에까지 수사관을 파견, 한국인 전과자들의 지문과 대조해봤지만 일치하는 지문은 없었다

 

또한 유류품으로 남겨진 힙색이간토지역의 할인 매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가방 표면에 묻어있던 세제가 일본내에서 판매하지 않은 종류에 안에서 검출된 모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모래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 범인은 '일본 이외의 나라에 갔다온 적 있는 인물'로 추정되기도 했다.

 

평소 피해자 가족은 정의감이 강한 성격으로 자주 규칙 위반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택 근처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광장에서 밤늦게 그곳을 이용하는 스케이트 보더가 있어 피해자 자택과 소음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그 밖에 뒷편에 있는 공원에 드나드는 폭주족들과 트러블이 일어났다는 설도 있다.

 

 

 

 

 

 

 

 

 

 

- 범인은 한국인? -

 


조금 황당한 것은, 미해결 사건의 범인을 추측하는 방송 프로그램 'TV의 힘'에서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미국의 초능력 조사관(?)을 불러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려보게 했는데, 얼굴의 형상이 '광대가 진 일본인 얼굴이 아닌 한국계 얼굴'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 ;;;

 

 

최근에 발매된 '세타가야 일가 살인사건, 15년째의 새로운 사실'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히토츠바시 후미야(一橋文哉)의 말에 의하면 이 사건은 재일교포 출신의 지하세계에서 암약하는 부동산 브로커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46세의 카네다 히데미치(金田秀道)라는 인물이며 이 인물의 사주를 받아 범행을 실행한 자는 이인은(李仁恩)이라는 32세 경기도 수원시 출신의 남성이라고 한다. 즉, 김수도(金秀道)가 주범이고 실행범이 이인은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인은을 범인으로 지목한 7가지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범인이 신었던 27.5, 28cm 테니스 슈즈 슬레진져는 한국 한정 판매품이었음을 비롯해 힙백이나 모자 등 범인의 유류품은 한국 제품이 많다. 이인은은 서울에 거주하며 자신의 활동권 내에 있는 슈퍼 등지에서 이러한 제품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2. 현장에 남겨진 점퍼 주머니에서 이인은의 본가가 있는 한국 경기도 수원시 주변의 것과 유사한 토사 입자가 검출되었다.

3. 미야자와 씨 집에서 발견된 지혈대의 라텍스 고무의 파편과 블레이 테스탄트 부츠의 가죽 조각, 심지어 감정 결과 범인이 현관 문 열림 자물쇠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스위스제 육군 나이프는 군대의 장비품으로 판명되었다. 한국 육군에 입대한 경험이 있는 이인은이 소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미야자와 씨 집에서 미세한 분말이 검출되었는데 벤제도린이라는 마약으로 밝혀졌다. 이인은 역시 약물 중독자였다는 의혹이 있다.

5. 힙백 안에 부착된 특수한 필름 조각과 티탄산 바륨의 미세한 분말이 모두 사용되는 곳은 인쇄 가공 공장인데 이인은 역시 이 사건 전에 인쇄 가공 공장에서 일했던 바 있다.

6. 이인은은 범인의 유류품과 같은 츄리닝을 입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다 악우들에게 자신을 "키드(해적 캡틴 키드라는 뜻이다)"라 하고 다녔으며 범인이 손수건에 뿌렸던 향수인 드러커 누어를 애용하고 있었다는 정보가 있다.

7. 이인은이 사건 전인 12월 상순에 연극을 보러 방문한 스기 나미 구의 연극 스튜디오 주변에서 범인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 미야자와 가족은 카미소시가야의 공원 확장으로 토지를 도쿄도에 매각하여 1억 수천만엔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일본 내에도 살인 청부업자가 있었겠지만 꼬리가 밟힐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기도 출신의 재일교포 김수도가 같은 경기도 출신인 이인은을 이용해범행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히토츠바시 후미야의 말에 따르면 이인은이란 인물은 본래 한국에서 불량 그룹(조폭?)의 리더였던 인물로 미야자와 집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결국, 미야자와 가족의 재산을 노린 김수도가 이인은에게범행을 사주했다는 것이 이 저널리스트의 주장이다.

 

 

 

 

 

 

 

 

- 사건 이후 -

 

사건 현장은 사건 전 공원 토지 확대를 위해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계획이 흐지부지되었다. 주변 주택들이 모두 허물어진 지금도 사건 현장은 허물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크게 다루어질 정도의 강력 사건이기 때문에 세타가야 근방에 방범등과 누르면 바로 신고가 되는 신고 장치 기계를 설치, 현재도 피해자 자택엔 방범 설비가 철저히 되있고 현장 보호를 위해건물의 진입로는 차단 되었으며, 경찰관이 매일 24시간 상주하며순찰을 돌고 있으므로 흥미를 위해 현장에 접근만 해도 의무 조사를 받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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