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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괴담회
도깨비가 살려준 이야기
익명
댓글 1

저희 시골은 충남에 있는 청양이예여

척 들으면 '청양고추' 가 유명할 것 같지만, 고추보다 유명한 '구기자'가 있는 곳이죠

시골이다보니 정말 낡은 집들도 많고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물도 더러 있어요

지금도 시골에 가서 지나가다 보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으스스한 건물도 많아요..ㅠ.ㅠ

참, 서론이 길었는데 공게에 있는 도깨비 관련된 글을 보고 생각이나 써 볼게요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워낙 디테일하고 저도 들은대로 적기보다 디테일하게 적는 걸 좋아해서 어쩌면 1,2로 나뉠 수 도 있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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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제가 어렸을 적 마을 잔치날 회관에서 어떤 할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에요

시골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냇물이 흐르는 냇가 옆 그 자리 그 곳에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어요
지금은 그 건물이 너무 오래되고 낡았는데 할아버님이 젊은 시절, 그 건물은 누군가 돌아가셨을때
관을 짜주시는 분이 임시로 짠 관을 보관하는 건물이었다고해요 당시엔 새 건물이었겠죠?


한날은 젊은 시절의 할아버님과 친구분들이 달빛 밝은날 수박밭 원두막에서 늦은 시간까지 거나하게 술을 드시고 계셨다고해요
술도 다 떨어져가겠다 얘깃거리 역시 동이 났겠다..
치기였는지 모르지만 할아버님 친구분께서 솔깃한 제안을 하셨더래요

마을 어르신들께서 부정 탈 수도 있으니 근처에도 가지말라고 신신당부한 그 건물을 한번 들어 갔다 와보자는 거 였어요
누군가가 들어가서 정해준 시간을 버티고 나오면 다음에 실패한 사람들이 술값을 내는 제안이었는데
술을 좋아하시는 할아버님에겐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드셨대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네분은 그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근처에만 갔는데도 한기가 느껴져 으스스 했다고 해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할아버님의 친구분께서 들어가실 차례가 되었는데
들어 가시길 꺼려하는 친구분의 등을 밀고 있던 찰나에
건물 안에서 '스윽 스윽' 소리가 나더래요

네분 모두 서로 눈빛으로 (너도 들려? 너도 들었지?) 라고 싸인을 주고 받다가
동시에 용기를 내어 건물의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본 순간
흰색 소복을 입은 여자분이 관을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쓰다 듬고 있더래요
'스스슥 스스스스슥 스스슥슥'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기에 본능적으로 '저건 사람이 아니다' 란 생각이 들더래요

그 길로 혼비백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집으로 달음박질을 하여 들어와 문을 잠궜는데
얼마나 정신없이 뛰쳐 들어왔으면 옷도 찢어져 있고 여기저기 상처도 나있고 땀에 절어 있었다고 하네요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아침 일찍 친구분들을 만나 어제의 일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할아버님만 그때를 기억하고 나머지 친구분들은 술을 마시고 곧장 집으로 갔다고만
말씀을 하시더래요 건물의 앞까지 갔던 일부터 가위 바위 보를 했던 것, 서로 건물안에서 들렸던 소리를 의식하고
눈빛을 주고 받던 것 까지 하나도 기억을 못하시더라는 거죠
오히려 친구분들은 할아버님이 술에 취해 잠들다 꿈을 꾼거라고 치부해버리셨더래요


그 날도 그 친구분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설명하다보니
날이 어두워져 어서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을 하셨대요
가뜩이나 무서운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비까지 내려 더 무서우셨다고 해요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디선가 '슥..스슥..스슥슥..' 소리가 들리더래요
숨도 쉴 수 없을만큼 긴장이 되어서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계셨는데
이내 궁금해져 이불만 살짝 들추어 빼꼼히 내다 본 순간
어제 봤던 그 흰색 소복의 여자가 방안에서 할아버님 방문을 미친듯이 쓰다듬고 있더래요
그대로 기절을 한건지 꿈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 하신 할아버님이
정신을 차렸을때 어느 논밭 한가운데에 서 계시더래요

주위는 온통 안개로 뒤덮여있었고 하늘도 뿌연 안개로 덮여 있어 앞이 잘 안보이셨다고 해요
단지 발 밑에 이미 베어놓은 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밭이었다고 생각하셨대요
발길 가는데로 걷다보니 저 앞에 큰 덩치를 가진 사내가 서 있더래요
말씀하신 크기로 보아하니 지금 최홍만씨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어요
여하튼 눈을 찌푸리며 조금 더 다가가자
그 사내가 알아차렸는지 뒤를 도는데 머리엔 상투를 트고 풀어헤친 저고리에 팔짱을 낀 팔은 물론이고 몸에 털이 여기저기 나있고
길게 길은 눈썹이 눈매가 굉장히 무서웠더래요
할아버님이 그대로 굳어있자 그 사내가 "이리와보슈" 라고 말문을 열었대요
다가가기 망설여져 그냥 서 있었는데 그 사내보다 몸집만 초등학생처럼 작았지 비슷하게 생긴 사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웃으면서 할아버님 주위를 빙빙 돌더래요
그래도 굳어버린 할아버님이 미동도 없자 큼직한 사내가 다가와서는 "벙어리유 뭔 미동이 없슈" 하더니
허리를 굽어 할아버님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여봐유" 하더래요
할아버님은 "여..여기가 어디여유" 라고 겨우 말문을 열었는데
빙빙 돌던 작은 사내들이 자리에 앉아서 "워디긴 워디여 우리 동네지~"하며 대신 대답하더래요
큼직한 사내가 "여까지 어찌 왔는지는 몰러두 집에 들어앉은 잡것때문에 당분간 고생허겄네" 하더랍니다

그때까지만해도 할아버님은 대강 짐작은 했지만

(이 양반이 말하는 우리집의 잡것이 그 여잔건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아는거지?) 라는 느낌보다

(여기는 대체 어디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은 뭐지?) 라는 생각이 더 깊이 드셨대요

무서움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셨던거죠, 그러다 이윽고 말문을 땐 할아버님께서

할아버님: 여기는..대체 어디유 지가 혹시 죽은건가유..?

라고 묻자 큼직한 사내는

큰 사내: 죽은건 아니유 여긴 원래 산사람이 오면 안되는 곳인데 워쩌다 여기꺼정 온거유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대요.

할아버님은 왠지 모르게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 그리고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셔서

경계심을 풀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고 해요

그때 큰 사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앉아있던 작은 사내가 재채기를 했는데

날아갈듯 옷이 휘날리고 태풍이 집을 삼키듯 등뒤로 엄청 심한 바람이 지나갔다고 해요

이윽고 재채기를 끝마친 작은 사내가 큰 사내를 바라보면서

작은 사내1: 딱 보니께 그 년이 분명허구먼 찢어죽일 년!

하면서 욕지거리를 하더래요 할아버님이 떨고 계시자 큰 사내가

큰 사내: 믿을지는 몰러두 우리는 도깨비여 도깨비, 자네는 죽은게 아녀 워쩌다 여기로 왔능가
아까부터 생각해 봤는디 그 육시럴 것이 눈 앞에 선헌거 빼고는 왜 일루 왔는가 잘 모르것소

하더랍니다 도깨비라는 얘길 들으니 할아버님께서도 엄청나게 신기했다고 해요

(도깨비..내가 도깨비를 다 보다니 이게 뭔일이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큰 도깨비: 그 년이 곧 가실 양반들 관에다 별 해괴한 짓을 다혀서 부정을 태운다니께..
편하게 갈 양반들도 그 년때문에 못거고 여기저기 떠도는겨..월매나 불쌍헌지

하고 얘기했대요 동시에

큰 도깨비: 워쨌든 그 년이 뭔 바람이 불어 그짝 양반한테 갔는지는 잘 모르겄지만
집안에서 봤다는 것부터가 위험한 거구먼 목숨부지허기 힘들어 알간?
그러고 여기는 우리가 사는 곳이여..산 사람이 못들어올 뿐이지 엄연히 여긴 우리 동네고
그 짝 양반이 꾸는 꿈도 아니여 그것만 알어

라고 얘기를 마치고 뿌연 하늘만 바라보더래요

단지 건물을 쳐다봤다고해서 곧 죽을 사람들한테 저주를 퍼붓고 이승에만 머물게 하는 그 여자귀신이 무섭기도 했지만

여기가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고 그 경계라는 사실에 아리송하면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할아버님은 도깨비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대요

할아버님: 지는 이자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구먼유..지가 워떠케 여기서 나가야 되는지
또 으떻게하면 그 여자를 떼어낼 수 있는지 귀띔 좀 해주시면 안되겠슈? 부탁이에유..지발유..

정말 간절하게 도깨비에게 얘길하자 큰 도깨비가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마치 그 소리가 천둥번개 같았다고해요- 를 들려주며

큰 도깨비: 우리가 배가 고퍼 그란디..그람 메밀묵을 많이 쑤어주면 한번 생각해볼테니께
정확히 5일뒤에 크으으은 대접에 메밀묵을 가득 담에 대문앞에 놓아 줄 수 있는가?

라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더래요

당연히 수긍한 할아버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안개속에서 오직 도깨비 옷저고리만 붙잡고

천천히 따라오라는 도깨비를 따라 꽤 오랜시간을 걷고 걸으셨대요

얼마나 걸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을때 금테로 두른 커다란 문이 보이더래요

큰 도깨비가 그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그 큰 대문이 열리면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 비추더래요

할아버님 말씀을 빌려 말하자면

따뜻한 비단옷 수십개를 갑자기 겹쳐입은 듯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고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님이 발로 이불을 박찼을때

머리를 이불끝까지 덮고 있었던 탓인지 온몸에는 땀범벅에 숨도차고 어지러웠다고해요

바로 실눈을 뜨고 방문을 바라봤을때 아까 봤던 그 여자는 없었구요

그 곳에서 몇시간 있었던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시간은 겨우 15분정도 밖에 지나있지 않았대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생생해서 할아버님은 일단 메밀묵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대요

그 이후 할아버님은 5일동안 매일 가위에 눌리시고 악몽을 꾸시고 밤마다 꿈에서나 현실에서 이따금씩 그 여자를 봐야만 했대요

참 이상한게 그 여자는 말도 걸지 않고 할아버님 머리 맡에서, 다리 밑에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할아버님에게 다가오더래요

4일째 되는 날 잠을 자는데 너무 한기가 들고 느낌이 좋지 않아 눈을 살며시 떴는데

그 여자가 할아버님 얼굴 앞에서 미친듯한 속도를 내며 손으로 할아버님 얼굴을 쓰다듬고 있더래요

이윽고 그 여자가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합쳐진 톤으로

그 여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곧 가자

이 단어를 계속 반복하더래요 번뜩 일어나 혼비백산해서 밖으로 도망나온 할아버님은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동네를 뛰어다녔대요

마지막 5일째 되는 날 할아버님은 모아왔던 돈을 탈탈 털어서 메밀묵을 엄청나게 많이 준비해서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대문 앞에 메밀묵을 놓아두었대요 그리고 돌아서면서

할아버님: 대접이 아니라 대야에 담아뒀으니 좀 도와주셔유..

라고 중얼거리고 방으로 돌아왔대요

문도 다 걸어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쓴 체로 방안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밖에서 친구분들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반가운 마음에 밖으로 나가려했는데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아 방 안에서 왜 부르냐고 대답만 하고 있으려니까

친구분들이 지금 빨리가야 한다고 자꾸만 재촉을 하더래요

궁금한 나머지 창호지에 자그맣게 구멍을 내어 밖을 바라보니

마당 담벼락 위에 검은색 물체 하나가 할아버님 친구 세분의 목소릴 흉내내면서 앉아있더래요

할아버님께선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치만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고 할아버님은 이성의 끈을 잡고

할아버님: 무슨일이여 이시간에..나 못나가 몸이 안좋아..

하시면서 계속 대답만 하셨다고 해요

그러자 밖에서

검은 물체: 안그럼 내가 직접 들어가 끌고 나와야겠구먼

하더랍니다 너무 놀랜 할아버님은 지금 옷을 입고 있다고 둘러대며 시간을 버셨대요

일부러 바시락 거리는 소리를 내자 더이상 밖에서 인기척이 없다가

갑자기

?: 이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겨 들어온겨! 사지를 찢어줄까 당장 꺼지지 못혀?
대체 무슨 해꼬지를 하고 다니는겨 죽은 사람이 할 짓이 있고 허지 말어야 할 짓이 있지
왜 엄한 사람을 괴롭히는겨
당장에 배가 고프니께 너라도 잡아 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는디 그리 해줘?!

라고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바로 큰 바람이 몇번 불고 방문이 흔들흔들 하더니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꺄르륵 들리고 덜컹덜컹 하더니 아주 잠깐이지만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지더래요

비명소리인지 바람이 문과 문사이를 타고 들어올때 나는 바람소리인지 헷갈리신다고 하셨어요

방안의 할아버님은 너무 놀래서 그 자리에 서서 굳어있었대요

아까 뚫어놓은 창호지로 밖을 살짝 내다보았는데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었대요

밖에 쥐죽은 듯 조용해지자 무슨 용기가 났는지 메밀묵을 확인하러 나갔는데

메밀묵이 멀쩡하더래요 손을 댄 흔적도 없는데 다만 색이 좀 이상했대요

대문 밖을 나가보니 어스름하게 비추는 달빛아래 원두막 가는 방향으로

그때 보았던 큰 도깨비가 주위에 도깨비불 몇개와 함께 덩실덩실 걸어가더래요

그리고 그 이후엔 도깨비도 그 귀신도 꿈도 가위도 악몽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세요

그러면서 저에게 호기심에라도 그 건물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는데도 불구하고

저한테 그런 일이 생길까봐 노심초사 하시는 듯 했어요

얘기를 들은 것은 여기까지에요

아이스크림이 다 녹을때까지 멍하니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요

정말 현실과 다른 경계가 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도깨비가 마냥 무섭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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