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초등학생 때 이야기야 지금으로부터 한 13년 정도 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아마 여름방학 전이었을거야 기말고사 끝나고 여름방학 시작하기 직전? 어쨌든 한참 더워지기 시작할 때지
그때 당시엔 초등학생들이 놀 만한 장소가 딱히 없었어 PC방 같은 곳도 없고 오락실도 엄청 멀었거든
어쨌든 놀 곳이 없어서 친구들은 우리집에 자주 들렸어 집 근처엔 조금만 걸어가면 하천도 있었고 아파트단지 놀이터도 컸었고 무엇보다 고물상이 많았거든
작은 고물상이 아니라 폐차된 찌그러진 차들과 전제품도 쌓여있는 큰 고물상도 있었지 나랑 친구들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질리면 곧장 고물상 뒷문으로 들어가서 놀고 그랬어
물론 놀다가 걸리면 엄마한테 엄청 혼났지만
그날은 금요일이였는데 개교기념일이었던 것 같아 학교도 쉬니까 나는 늦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같이 놀 친구들을 만나러갔지
그런데 그날따라 친구들이 코빼기도 안보이더라고
찾아가보니까 다들 부모님이랑 계곡에 놀러갔거나 어디갔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집에 없더라고
우리 집에서 제일 먼 곳에 사는 정호만 유일하게 집에 있었어
정호도 마침 자기 부모님도 일하러 나갔고 심심했는지 놀자고 밖에서 부르니까 바로 나오더라고
나랑 정호는 둘이서 친구들 좀 찾아보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지 근데 결국 다른 애들은 안보이더라
결국 둘이서만 놀기로 했지 아파트 단지 모래터에가서 노는데 둘이서만 노니까 금방 질렸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고물상이 떠올랐나봐 어느 새 우리 둘은 고물상에 와 있더라
큰 고물상은 여러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어 친구들이랑 나는 평소에 그곳을 티비 코너 냉장고 코너 자동차 코너 등등 구역별로 나눠 이름 붙이고 놀았어
그날은 정호가 냉장고 코너에 가서 놀자더라 냉장고 코너는 말 그대로 냉장고만 있는 곳이야 거기가면 냉장고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쌓여 있어 거의 2층이 좀 넘는 높이? 하여튼 엄청 높았어
나랑 정호는 냉장고 코너에서 놀고 있었어 냉장고 틈에서 지나가는 아저씨들 몰래 숨어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호가 엄청난 걸 찾았다고 했어 나도 궁금해서 따라갔지
가보니까 엄청 큰 진짜 봉고차만한 냉장고가 있더라 군대가서 그런 냉장고를 본 적있는데 아마 영업용 냉장고거나 창고 저장용이었던 것같아 은색 스테인레스에 크기가 굉장히 크니까 우린 엄청 신기해했지
한참을 뚜껑을 열어보면서 놀고 있는데 정호가 갑자기 냉장고 안에 들어가보겠다네?
난 말렸지 냉장고가 엄청 크긴 했지만 안쪽은 어두워서 귀신 나올 것같았거든 내가 말리니까 얘는 오기가 생겼는지 들어가서 십분있다가 나올거래
나는 무섭다고 안들어간다니까 그럼 밖에서 아저씨들 오는거나 망보고 있으라더라고
같이 들어가는건 역시 무서우니까 알았다고 하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어
다시 한번 말려봤는데 정호는 기어코 들어가서 문을 닫더라고
어쨌거나 여기서 노는 걸 아저씨들한테 들키면 혼나니까 나는 망을 보고 있었어 어느새 해도 지고 있더라 하늘빛이 누런색이었으니까
한 오분쯤 지났나 정호가 문 좀 열어달라고 하더라
아까까지만 해도 자기 손으로 잘만 열었으면서 열어달라고 하니까 뭔가 이상했어
스테인레스 손잡이를 잡고 열려고 힘을 줬지 그제서야 왜 정호가 열어달라고 했는지 알겠더라
문이 안 열리더라고 분명 아까까진 잘 열렸었는데 영업용 냉장고라서 그런가 무슨 장금장치가 있었는걸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정호는 안에서 밀고 나는 밖에서 밀었는데 결국 문이 안 열리더라
문이 안 열리니까 둘 다 겁을 먹기 시작했지 바보야 그러니까 왜 들어갔어 송충아 강아지야 하면서 둘이 싸우기 시작했어
어찌됐든 문이 안 열리니까 나는 부모님들을 불러오기로 했어
정호야 미안해 내가 금방 부모님들 불러올게 조금만 참아 나 금방 온다 라고 하니까 정호도 알았다고 빨리와야한다고 하더라
나는 큰일났다 하면서 바로 집으로 달려갔어
집에 가니까 엄마가 밥을 하고 있더라고 멸치도 볶고 어묵 볶음도 하면서 저녁을 차리고 계셨어
엄마한테 고물상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섭더라고 평소에 고물상에서 놀다가 걸리면 어마무시하게 혼났거든 그 위험한 곳을 왜 가냐 차에 깔려 뒈질 수도 있는데 등등 무시무시한 말로 혼나고 회초리로 맞기까지 했지
어찌됐던 엄마한테 말하는 게 무서워졌어 이걸 말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빠가 퇴근하고 오셨어
그런데 아빠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 있더라 잘보니까 동네치킨 봉지였어 반반 무마니 치킨 한 마리 사오셨더라고
그 때부터였던 것같아
치킨에 정신이 팔려서 정호도 잊어버리게 되더라 그날 그렇게 저녁에 치킨을 맛있게 먹고 정호도 맛있게 까먹어버렸지
어쨌든 그렇게 정호를 까먹어 버렸어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까 엄마 아빠가 바쁘게 준비하고 계셨어
엄마 뭐해? 하니까 계곡 갈 준비를 하신대 고모도 내려왔으니 같이 계곡 놀러가쟤
나도 아싸 좋다 하고 바로 준비한 뒤 토요일 하루종일 계곡에서 놀았어 냉장고에서 평소에 못 꺼내먹던 음료수도 막 꺼내먹고 삼겹살도 구워먹었지
계곡에서 신나게 놀고 집에 가면서 피곤했던지 차에서 바로 잠들어 버렸어
토요일도 그렇게 순삭되더라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동생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대교방송(그때 투니버스 같은 채널은 없고 대교방송이 한참 유행이었음)에서 야이바랑 부메랑 파이터를 보고 있더라
아침부터 티비보고 점심에는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왔지
일요일도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잤던거같아
그렇게 월요일이 됐다
아직 방학은 안했으니까 학교에 가야지 엄마가 싸준 가방을 들고 등교했는데 교문 앞에 누가 전단지같은 걸 나눠주고 있었어 가까이 가니까 딱봐도 정호네 엄마였어
아 맞다 정호
그제서야 냉장고에 두고온 정호가 기억나더라고
와 진짜 큰일났다 ㅈ됐다 ㅆㅂㅆㅂ하면서 등교하다 말고 뒤돌아서 고물상으로 달려갔어
살면서 그렇게 뛰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을거야
고물상에 뛰어가서 정호를 찾으려고 냉장고 코너에 가봤더니 냉장고가 사라지고 없더라
그 큰 냉장고가 없어졌더라고
그냥 냉장고 코너 자체가 사라졌어 그 많던 냉장고가 싹 다 사라져 버렸더라고 진짜 집채만한 게 많았는데 그게 다 사라져버렸어
내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고물상을 다 찾아봤는데 진짜 없더라
일단 포기하고 학교로 다시 갔는데 등교하다 말고 갔 던거라 이미 수업이 시작했지 집도 가까우면서 왜 늦게 등교했냐고 선생님께 혼났어
혼나면서도 정호 생각밖에 안나더라
어떡하지? 이걸 말해야하나? 누구한테 말하지? 정호네 엄마한테? 우리 엄마한테?
하루종일 고민했는데 결국 말하면 엄청나게 혼날거라는 결말에 도달하더라
정호는 이미 사라져 버린거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같아서 그냥 말 안하기로했어
그 이후에 우리 집이 이사해서 중학교 때부터는 다른 동네 학교를 다녔거든
뭐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정호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로 봐서는 결국엔 못 찾았다나봐
최근에 대학교 다니면서 초등학교 근처 지나갈 일이 많은데 평일날 지나갈 때면 교문 앞에 정호네 엄마가 아직도 계시더라고
우리 아이를 찾습니다 팻말에 달린 사진이 딱봐도 정호야
그냥 끝이라고
냉장고째로 사라졌는데 유괴범이 잡아갔는지 그냥 거기 실려갔는지 누가 알겠어?
정호야 미안해
출처 : https://m.blog.naver.com/mozart258/22289103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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