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우체국
쿠리하라 : 점점 범인에게 다가가고 있네요.
그런데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우체국의 위치에 주목하세요.
쿠리하라 : 범인이 이용한 우체국은 가나가와현 에비나시 카자미역을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그말인 즉, 범인의 집은 카자미역 주변에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겠죠.
우케츠 : 그렇네요.
쿠리하라 : 다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째서 전철을 쓰지 않는가?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범인은 역에서 2km 넘게 떨어진 키시에 초등학교 앞 우체국까지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철을 타고 다음 역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가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우케츠 : ……뭐, 듣고 보니 그렇네요.
쿠리하라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아까 찾아본 결과 카자미역 부근에는 또 하나의 우체국이 있다고 합니다.
쿠리하라 : '사쿠라가오카 우체국'…… 세 우체국과 같은 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긴 한 번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우케츠 : 그건…… 이상하군요.
쿠리하라 : 범인은 사쿠라가오카 우체국을 이용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해서 이 우체국을 이것저것 조사해봤더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쿠라가오카(桜丘)'는 벚꽃 고개라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약간 높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도보로 가려면 계단을 몇 번 올라가야 하죠.
즉 범인은 어떠한 이유로 '전철'과 '계단'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우케츠 : 전철과 계단……
쿠리하라 : 범인은 휠체어를 탄 게 아닐까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아마도 고령자…… 내지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라카와 씨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문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평범한 발소리가 아니라 "끼익 끼익"거리는, 한쪽 발을 끌면서 움직이는 듯……"
우케츠 : 그러면 우라카와 씨가 들은 발소리는…….
쿠리하라 : 틀림없이 범인의 소리입니다.
———발송자는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다. 홀로 걸을 수는 있으나 평소에는 휠체어를 탄다.
작년 10월, 여성은 우라카와 씨가 사는 "코마키다 맨션"을 방문했다. 맨션 앞에 휠체어를 세우고 걸어서 공동 복도로 들어가 발을 끌면서 102호실 앞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라카와 씨가 나오는 기척을 느끼자, 서둘러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인가?
평소에 전철로 다음 역으로 가는 것조차 피하는 사람이, 일부러 가나가와에서 도쿄까지 찾아왔다……. 꽤나 중요한 용무가 틀림없다.
우케츠 : 쿠리하라 씨……. 범인은 우라카와 씨의 방 앞에서 무엇을 한 걸까요?
쿠리하라 : 그 힌트는 송장에 있습니다. 수취인명을 보세요.
코마키다 맨션 102호 - 우라카와 님
쿠리하라 : "우라카와 님"…… 어째서 수취인명에 성씨만 적혀 있을까요?
우케츠 : ……그건 항상 신경쓰였습니다.
쿠리하라 : 주소가 적혀 있다면 성씨만 적더라도 배달은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수취인명에는 풀네임을 적는 게 상식입니다.
우체국 직원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 범인이라면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은 피했을 겁니다.
어째서 이름은 쓰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겁니다.
범인은 우라카와 씨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요?
우케츠 : ……그래도 풀네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매달 택배를 보낸다니…….
쿠리하라 : 이상하죠. 평범하게 생각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뇌를 180도 회전시켜서 상식을 버려야만 범인의 사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우케츠 : 상식을 버리라고 하셔도…….
쿠리하라 : 범인은 우라카와 씨에게 택배를 보내는 게 아니라, 우라카와 씨의 방에 택배를 보내는 게 아닐까요?
우케츠 : 뭐라구요!?
102호실
우케츠 : 주민이 아니라 방 그 자체에 선물을 보낸다는 말입니까?
쿠리하라 : 그렇습니다. 그거라면 범인이 우라카와 씨의 방 앞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범인은 문패를 본 겁니다.
"코마키다 맨션 102호실에 택배를 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송장에 거주자의 이름을 적어야만 한다"
"하지만 102호실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방 앞까지 보러 온 거죠.
문패에는 보통 성씨만 써둡니다. 그래서 송장에도 성씨밖에 적을 수 없었습니다.
우케츠 : 그래도 방 앞까지 갈 수 있다면 본인이 직접 전달해주면 될 텐데…….
쿠리하라 : 사실 그게 가장 이상적이겠죠.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나가와에서 도쿄까지 매달 오는 건 상당한 중노동입니다.
우케츠 : 그런가……. 그러면, 애초에 범인은 어째서 "102호실"에 선물을 보내려는 마음을 먹은 걸까요?
쿠리하라 :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우케츠 씨는 이미 눈치채지 않으셨나요?
우케츠 : …….
———뻔히 보이는 사실이다.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불길한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이 아닌 방…… 즉 "장소"에게 물건을 보낸다. 그 행위는……
우케츠 : 공양…….
쿠리하라 : 그게 가장 들어맞는군요.
즉, 제삿상입니다.
예전에 102호실에서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범인은 그 사람에게 공양하기 위해서 방에 매달 공물을 보내는 겁니다.
사고 현장에 꽃을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케츠 : 그래도…… 택배에는 생활용품이 들어 있었는데요? 일용품을 공양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쿠리하라 : 아마도 위장일 겁니다.
겉으로는 공물로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서 자신의 의도를 감추려고 한 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 게, 택배가 "공양"이라는 걸 안다면 중요한 정보가 들통날 테니까요.
우케츠 : 중요한 정보요?
쿠리하라 : 범인은 예전에 102호에서 죽은 거주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케츠 : 아……
쿠리하라 : 범인에게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102호실에서 죽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죠.
우케츠 : 그러면 부동산업자에게 물어볼까요?
쿠리하라 : 아니요, 부동산업자는 안됩니다. 기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안 가르쳐줄 겁니다.
우케츠 :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쿠리하라 : 집주인입니다. 코마키다 맨션은 도쿄에서 월세가 2만엔인 파격적인 물건입니다.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낡아빠진 맨션입니다.
우케츠 : 너무 뭣하잖아요.
쿠리하라 : 이런 맨션의 집주인분들은 수십 년 전부터 임대를 해온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정이 두텁고 기밀 유지 의무도 잘 모릅니다.
눈물로 애원하면 먹힌다는 말이죠.
———쿠리하라 씨와 대화를 끝내고, 나는 우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방에서 있었던 사고와 공양에 대해선 솔직하게 전하기로 했다. 그는 혼란한 기색도 없이 냉정하게 이야기를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우라카와 : 방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건 분명 다소 찝찝하긴 하지만, 유령을 믿는 성격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도 발송자께서 적대심이 없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안심이네요.
다음에 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집주인 댁에 찾아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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