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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땐 안 보이고 필요 없을 땐 바로 앞에 있다. 위치가 정해져 있지만 늘 다른 데 있다. 정리란 결국 다시 그 자리에 놓는 일.
청소를 해도 하루만 지나면 먼지가 다시 쌓인다. 눈에 안 띄는 날엔 괜찮고 잘 보이는 날엔 거슬린다. 청소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신경 쓰기 시작했을 때 한다.
케이블이 한 번 꼬이면 매번 풀 때마다 엉킨다. 그게 귀찮아서 그냥 감아 두고 산다. 편해 보이지만 계속 불편한 방식.
브라우저에 탭이 남아 있다. 읽다 만 글, 살까 말까 했던 물건, 확인만 하려던 뉴스까지. 닫지 않은 건 끝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미룬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지도.
손잡이를 잡는 일은 짧다. 생각보다 많은 결정이, 그 짧은 동작 안에 있다.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나올 것인가. 머물 것인가, 나설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돌리는 순간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문은 닫힐 때보다 열릴 때 더 조용한지도 모르겠다.
따뜻하게 마시려고 따라놓은 커피가 몇 시간 지나 식어버렸다. 처음엔 다시 데우려고 했고, 그 다음엔 그냥 두었다. 식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도 좀 식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쩌면 이 온도가 지금 나한테는 맞는 걸지도. 뜨겁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상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앉은 사람의 모양이 묻어난다. 등받이에 기댄 시간, 한쪽으로 기운 자세, 팔걸이에 무심히 얹혔던 손까지. 의자는 말이 없지만 자리를 비운 뒤에도 그 사람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의자 하나를 고를 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걸 떠올린다.
아침에 따른 물이 하루 종일 책상 위에 있다. 몇 번이고 잊혔다가 목이 마를 때마다 다시 손이 간다. 마신 건 물인데 습관처럼 느껴진다.
손에 익은 볼펜이 있다. 잔소리 많은 하루를 조용히 받아 적는다. 끊기지 않고 묵직하게 나오는 잉크처럼 버티는 법도 그렇게 배웠다.
겨울 이불을 접으면서 몸에 남아 있던 무게가 같이 접히는 기분이 들었다. 두툼하고 부드럽고, 조금은 게으르게 만들던 감촉. 봄이 와도 한동안은 그 이불의 촉감이 그리울 것 같다.
아직 손에 잘 맞는 오래된 머그컵이 있다. 입이 닿는 부분은 살짝 닳았고, 손잡이는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커피는 이 컵에 담을 때 가장 맛있다. 깨지지 않는 것보다, 손에 익은 게 더 오래 가는지도 모른다.
쓰고 싶은 말이 생기면 꼭 그 시작점을 찾아본다. “왜 이걸 쓰고 싶었지?” “이 마음은 어디서 왔지?” 좋은 글은 기억을 따라가는 발걸음에서 나온다.
책상 앞에선 아무리 앉아 있어도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따라온다. 산책 중에 떠오른 한 문장이 책상에서의 두 시간보다 나을 때가 있다.
글이 안 써질 땐 억지로 쓰지 않는다. 그냥 앉아 있는다. 문장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문장이 나한테 오기를 기다리는 거다. 좋은 글은 늘 조용히, 늦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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