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와이프는 자영업자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사를 시작했고 한 자리에서 10년을 장사했다.
많은 경쟁 업체들이 생기고 망하는 동안에도 버텨낼 만큼 야무지고 뚝심있는 사람이다.
몇 달 전 매장 바로 옆에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매장이 큰 돈을 들여 오픈했다.
가격 내리고 이벤트하며 자본으로 후려치니 10년 단골들도 다 소용이 없었고 결국 와이프는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주말 저녁에 술에 취해 엉엉 우는 와이프를 보면서
잃어버린 것은 돈이나 직업이 아니라 와이프의 지난 청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와이프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10년동안 하루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는데 그 깟 돈에 밀려서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자꾸만 화가 난다고 말했다.
미안했다.
와이프의 폐업 소식에 당장 다음 달 빠져나갈 주택 대출금을 먼저 떠올렸던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단단하고 열정적이던 와이프의 삶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우린 아직 집도 없고 차도 은행꺼지만 사실 집이 있고 차가 있어도 당신이 그렇게 울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목 끝에 걸렸다.
지난 달에 주식도 다 팔고 적금도 깼다. 정말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와이프에게 낡은 중고차 한 대를 사주고 역 앞 번화가 상권에 원하던 가게를 하나 얻으라고 전 재산을 송금 해주었다.
막 퇴근하려는데 와이프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온다.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계약금 넣었다고 진짜 열심히 살거라고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너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어딨냐 그거 반만 해도 충분한데..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데 진짜 20대 초반에 보고는 본 적 없는 작은 숫자가 통장 잔고에 찍힌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리 후련한지 모를일이다.
10년 넘게 태운 담배인데. 이제 끊을 때가 됐나보다.
------------------------------------------------------------------------------------------------------------------------------------------------
추가.
안녕하세요. 작성자 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많은 분들의 관심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함께 교차합니다.
생각 없이 써내려 간 저의 글에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기꺼운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의 경솔한 글에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와이프가 오해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이렇게 추가 글을 작성합니다.
와이프는 매일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10년을 살아오면서도
자기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웃으며 일하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듯 사정 없는 집이 없고 저희도 그런 사정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020년 갑자기 시작되어 거의 3년간 지속된 코로나의 여파는 자영업자들에게 재앙과 같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몇 백 만원 정도는 우습게 나가는 자영업자에게
1년이면 왠만한 직장인들 연봉 지출하는 것은 일도 아니더군요.
2022년 전세 사기 열풍은 또 어땠습니까.
이제서야 웃으며 지난 일 취급하지만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 와이프는..몇 줄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사정과 사건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함께 걸어준 너무나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 살아온 만큼의 보상을 받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결국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따뜻한 격려와 또,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 덕분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성실하게 걸어온 시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통장 잔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많은 자영업자분들의 근심이 클 것으로 압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선택됨
- 현재 페이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