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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조문객이 단 한 명도 안 왔다는 사람


1996년 10월 23일 수요일 낮 인천광역시 모 아파트에서

한 48세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79세 남성을 찾아가 둔기로 마구 내리쳐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남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살인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잘 죽었다'며 조롱했음

과연 누가 살해당했길래 추모는커녕 비아냥만 받은 걸까?

 

 

 

 

살해당한 인물은 전직 육군 장교 안두희(安斗熙)로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가 총격, 사망케 한 인물임

안두희는 범행 직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불과 석 달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15년형으로 감형되었고

심지어 그가 복역중이었을 때도 그를 위한 방만 호텔 수준으로 개조되는 특혜를 누리다 6.25 전쟁 발발 이후엔 아예 사면되었고

이후 군납 사업으로 떼돈을 벌며 승승장구함

 

그러나 그를 단죄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고, 수 차례 그를 처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는데

1965년에는 목을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었고, 1987년에는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당하는 사건이 있었음

 

 

 

 

결국 1996년, 버스 기사 박기서가 '민족의 국부를 시해한 쓰레기가 천수를 누리는 꼴을 볼 수 없다'며

'正義棒'이라는 글자를 새긴 방망이를 들고 그를 직접 찾아가 머리를 내리쳐 사망하게 함

사건의 조사를 담당한 형사는 박기서에게 이 정의봉을 돌려줬는데

범행 가해자가 범죄에 사용한 도구는 압수 후 폐기하는 것이 원칙임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경찰 단계에서부터 보통의 살인사건과는 다르게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음

 

사건 직후 박기서에게는 구명의 손길이 이어졌는데

수많은 변호사들이 그에게 무료 변호를 해주겠다며 줄을 섰고

박기서의 아들이 다니던 태권도장의 관장은 수업료를 면제해주기도 했음

 

그 결과 박기서는 징역 3년형이라는 살인죄로는 획기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으며 (살인죄는 법정형이 최소 5년 이상임)

그마저도 1년 5개월 복역 후 사면되었음

 

 

 


 

안두희의 빈소엔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고

조화는커녕 하다못해 영정 사진마저도 없어졌다고 전해짐

다른 고인의 장례를 지키던 장의사가 '(고인의 생전 행적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너무 측은했다'며 대신 불을 켜줬다니

그의 가는 길이 얼마나 초라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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