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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사람들
지리산화대종주2

벽소령의 밤-

벽소령대피소 도착하여 식사한 것 말고는 별반 한일도 없는데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르킨다. 모포하나를 접어 깔고 하나를 뒤집어 쓰고 누우니 졸음이 밀물처럼 엄습한다. 털보님이 옆에서 뭐라고 하는데 기억은 안나고 자장가처럼 들리며 이내 꿈나라로 접어든다.

 

전날 열차에서 잠을 자지못하고 하루종일 산행했기에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골아 떨어질줄 알았더니 10시30분경 잠에서 깨어난다. 잠시 잠결에 깬것이 아니라 잠에서 확~ 깨어나 말똥말똥한 것이다. 어두운 대피소안 침상들은 비교적 고요한 편이고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버티나 걱정이 앞선다.

 

바깥에 나가면 보나마나 칼바람 몰아치는 매서운날 일것이고 이대로 밤을 지세자니 시간은 너무 많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좌우로 코고는 소리가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할수없이 일어나 바깥으로 나간다. 고요와 적막만이 흐르는 칠흙같은 벽소령.....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 하늘의 달이라고 한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따뜻한 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엄동설한이 아니던가.....

 

바깥에 나와 시계을 보니 11시10분을 가르킨다. 갑자기 또 집생각이 나기에 집에 전화 한통하고... (지리산 종주중 벽소령 대피소가 유일하게 핸펀이 시내처럼 감도도 좋고 제일 잘터지는 곳입니다). 하마에게도 전화를 한통 건넨다. 눈길에 위험해 시간통제에 걸려 벽소령에서 한숨 db자고 일어났는데 내일 일정도 걱정이라니... 하마 왈.. 종주 때려치고 세석에서 탈출하랜다... su..벌~~~

 

바깥에서 달달 떨며 담배 한대피고 들어서니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인 등산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출발했건 이곳까지 오려면 험한 산길 수십리들을 달려왔을 등산화들.. 그리고 날 밝으면 또 수십리 길은 가야할 등산화들을 보니 지금 깊이 곤히 잠들었을 산님네들의 의지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때 기록을 남길 생각함)

 

다시 대피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숙박침상방 전 넓은 방 히터앞에서 혼자 어둠속에 우두커니 서서 내일 일정을 정리한다. 05시경 출발하여 오후1시전에 천왕봉 도착하면 유평리 대원사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고 오후 2시 넘어 천왕봉 도착되면 일정상 중산리로 내려서기로 결정한다.

만일 오후 1시~2시 사이 천왕봉 도착하면 서로의 컨디션이나 일기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침상에 올라가 모포를 가지고 내려와 조금 춥긴는 하지만 바깥 대피소 방에서 내일의 일정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이렇게 지리산에서의 벽소령 밤은 깊어만간다.

 

덕평봉-

대피소 침상방과 달리 바깥방이 써늘함을 잠결에 느끼며 문 여닫는 소리에 새벽녁 몇번 잠이 들다 깼다를 반복한다. 새벽 4시무렵 털보님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잠이 덜깬 나는 종주고 뭐고 그냥 잠이나 푹잤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다가는 일정에 지장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일찍 길을 떠나자니 어제 저녁과 밤중의 차디찬 벽소령 생각에 이리저리 출발시간을 늦춰본다.

 

예정되었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찍 길떠나는 것이 유리하지만 차디찬 밤공기가 싫어 05시30분 출발시간을 정하고 꿈지럭거리다가 만틴이 사준 양갱 하나와 빵부스러기 하나를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넣고서 윈드자켓 위에 고아자켓을 걸치고 스패츠와 아이젠을 차고 장갑을 끼며 완전무장을 한채 벽소령을 나선다.

 

차가운 밤공기와 어둠을 가르며 순탄하며 좁다란 평지같은 길이 한동안 길게 이어진다.

밤새 얼어붙은 눈밭길 위로 뿌지직~ 뿌지직~ 요란하게 아이젠을 찬 등산화 발자국소리가 고요와 적막감이 감도는 지리산 밤하늘에 울려퍼진다. 오른쪽으로는 반달이 환하게 떠올라 계속 우리들을 따라오며 내려다 보는듯 느껴진다.

 

지리산 10경의 하나라는 벽소령 맑고 환하며 영롱한 달빛의 호위를 받으며 지리산의 어둠을 헤치고 덕평봉을 향한다. 구벽소령을 지나고 벽소령대피소 출발 2.4km지점에 도달하니 선비샘이 나타난다. 추운 날씨에 샘은 얼어 붙어있고 이곳에서부터 여명이 시작된다. 하늘과 산이 맞닿은 동녁에 선홍색 붉은빛이 점점 자리를 넓혀나간다.

 

칠선봉-

덕평봉을 지나 칠선봉을 향하는 길에는 거대한 바위군들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연의 길을 걸으며 자연의 품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뭇 새롭기만하다.

칠선봉을 오르던 중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엄한 지리산의 일출이 시작된다. 어둠의 하늘과 악수하고 동쪽의 하늘에서 뾰족히 얼굴을 내미는 태양이 우리들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외삼신봉인 듯한 봉우리에서 고개를 내민 태양이 장대한 지리산 자락에 햇살을 내뿜는다. 우리는 지리산에서 희망에 찬 아침을 맞이하며 길을 재촉한다. 밝은 햇살이 뿌려지는 앞으로는 영신봉과 촛대봉 그리고 제석봉 너머로 천왕봉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영신봉-

남성적인 설악에 비해 따뜻한 어머니 품처럼 여성의 모습으로 인간들을 품는다는 지리산!! 하지만 지리산 종주는 자신의 의지와 인내심과 체력을 테스트하기도한다. 해외원정대 훈련시 설산훈련은 제주 한라에서.. 그리고 암벽은 인수에서.. 그리고 지구력 훈련을 이곳 지리산에서 한다고 한다.

 

벽소령을 출발한지 1시간 50분가량 소요되어 칠선봉을 오르고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에 다다르기 까지는 45분정도가 소요된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 표지판 거리는 6.3km이고 소요된 시간은 2시간 45분이 소요되었다. 08시경 눈이 덮힌 기나긴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무계단을 지나 얼마간 길을 더하니 영신봉이 나온다.

 

여기서 세석대피소까지는 불과 10분거리 안에있다. 예전 당일종주시는 그걸모르고 일행과 이곳에서 50분가량쉬며 점심을 먹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얀 눈밭위로 눈부신 겨울해는 쏟아진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우측을 봐도 좌측을 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 밖에 없다. 지나온 연봉들과 올라야할 연봉들... 주름에 주름을두른 아름답게 골진 산세에 매료되며 영신봉에서 좀 더 길을 내려서니 아늑한 평전에 자리한 세석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세석-

얼마전 16좌산행시 접했던 세석대피소는 최근에 다시 보게되어서인지 객지에서 아는 사람만난듯 반갑게 느껴진다. 노고단 운해와 피아골 단풍.. 반야낙조와 새벽에 벽소령을 떠나 바라다본 벽소령 명월과 불일폭포.. 연하선경과 천왕봉 일출.. 그리고 칠선계곡.. 섬진청류의 비경과 더불어 세석평전의 철쭉은 지리산의 10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석평전은 온통 눈에 뒤덮혀 아름다운 설국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다.

 

아침식사를 해결하고자 일단 취사장에 들어서니 한팀이 식사를 마치고 길을 떠날 채비중이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취사장안에서 어제의 식단과 별다를바 없는 아침 식사준비를 한다. 역시 라면 하나끓일 물 끓이는 시간이 30분이상 허비된다. 지리산의 심장부라 일컫어지는 세석평전에서 아침식사와 휴식을 취한후 장터목 방향으로 발길을 옮겨놓는다. 이곳 세석은 머지않아 산수유 개화의 시작으로 봄을 알리는 진달래와 철쭉으로 봄 단장에 들어갈 것이다.

 

촛대봉-

해는 점점 고도를 높여가며 따사로운 햇살을 내뿜는다. 완만한 경사면을 오르면서 촛대봉을 향한다. 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촛대봉에 오르니 제석봉뒤로 천왕봉의 웅장한 위용과 발아래 도장골의 아름다움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뒤를 돌아보니 눈에 덮힌 세석고원의 광활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신봉-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 가기전에 삼신봉이 나온다. 삼신봉(三神峯)은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로서 참다운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악양으로 흘러내린 형제봉 능선과 멀리 남해 바다의 일망무제, 탁트인 전경을 선사해준다. 특히 인적드문 비경의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 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 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연하봉-

세석대피소를 출발하여 촛대봉과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이르기까지는 1시간 50분이 소요되고 표지판 거리는 2.8km이다. 연하봉은 해발 1,730m로 설악산보다 해발이 높게 솟아있다. 좌우로는 눈을 뒤집어쓴 거대한 산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쪽빛하늘 아래 하얀 눈이 덮힌 거대한 암반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빼어난 풍광을 연출하며 탄성을 자아내게한다. 연하봉을 내려서 장터목 가는 길목에는 고사목 한그루가 처연하게 눈길을 끌고 16좌 산행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다가가 고사목 옆에서 추억의 흔적을 묻어놓는다. 이곳에서 눈길을 헤치며 10여분 길을 더하니 장터목대피소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며 다가온다.

 

장터목-

이정표 거리로는 3.4km.. 세석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 27분만에 장터목대피소에 발을 들여놓는다. 겨울날의 평일이라 그러지 세석대피소와 다름없이 이곳 장터목대피소도 사람의 흔적이 별로없이 썰렁하다는 느낌이 전해온다. 16좌 지리산 산행시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기에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최고봉 천왕봉의 자매봉인 제석봉의 남쪽능선 고갯마루를 장터목이라 한다. 장터목은 해발 1,750m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 등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준다.

 

지난16좌 산행시 그리 좋아했던 흡연장소에는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고 흡연장소는 취사장 바같쪽에 마련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아침나절 세석대피소에서 우리가 식사준비 할 때 길 떠났던 일행들을 만났다. 그들도 도착한지가 얼마되지 않았단다. 세석에서 식사와 휴식시간 약 1시간20분을 생각하면 우리의 발걸음이 조금 빠르긴 빨랐나보다.

 

이곳에서 일전 한반도님이 한라산에서 구리시로 가져온걸 우리는 다시 아랫녁.. 지리산으로 가져와 꿀맛같은 휴식과 함께 그걸 즐긴다. 다른 한손에는 떠날때 마운틴이 건네준 자유시간이 들려있다. 그리도 혹독하게 춥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갔는지 취사장 옆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그때.. 만틴한테 전화가 온다.

 

장터목 도착하자 마자 핸펀을 켜니 만틴에게서 "지금쯤 중봉지나 치밭목쪽으로 하산하냐?"는 문자가 와 있길래 "일정에 차질이 생겨 지금 장터목"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를 한 모양이다. 이렇듯 심신이 지치고 고단할때 쯤이면 염려해주고 격려해 주는 한줄의 문자와 전화 한통.. 한마디가 우리들에게는큰 힘이 되고.. 용기가 되살아 난다.

 

제석봉-

장터목에서 간단한 휴식을 취한후 급한 경사가 시작되는 제석봉을 오른다. 제석봉에 오르는 높은 계단길이 눈속에 묻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8m로 지리산에서 중봉 다음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영봉인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한층 더 유명하다.

 

제석봉을 오르는 좌측으로는 고사목 군락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예전에는 많은 고사목들이 살아있는 자연경관처럼 멋있게 보였으니 사간이 흐른 지금은 그 고사목들도 모습이 거의 사라져 듬성듬성할 뿐이다. 10만평이나 되는 이곳은 예전에는 한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숲이 무성했는데 도벌꾼들이 도벌 흔적을 없애고자 불을 질러버려 고사목 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1,808m의 제석봉에 오르니 천왕봉이 바짝 앞으로 다가와 있다. 천왕봉 좌측으로는 중봉에 우뚝 솟아있고 산줄기 골따라 Y자로 마치 스키장 슬로프마냥 깊은 눈길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산로도 곳곳에는 많은 눈이 쌓여 구조표시목이 끝부분만 드러내고 있으며 해발 1,814m로 표시된 통천문 표지목에도 절반은 눈으로 덮혀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철제 사다리계단 3번을 지나면서 이곳 지리산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천왕봉에 다다른다.

 

천왕봉-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6시간 50분.. 들머리부터 시작된 산행시간 18시간 50분.. 그리고 거리로는 연기암을 출발한지 표지판 거리로 34.9km만에 이곳 지리산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인 지리산의 영봉인 천왕봉에 발들 내딛는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이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정상표지석을 보니 뭔가를 해냈다는 작은 자긍심이 솟아난다.

 

이곳 저곳에서 수차례 오른 천왕봉이지만 겨울날... 그리고 평일이라 그런지 예전 그 어느때 보다도 한가롭기 그지없다.정상에서 사진이라도 한장 찍으려치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북새통을 이루던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이리저리 연신 셔터를 눌러본다. 장엄한 지리산의 능선들이 발아래 펼쳐지고 골진 산세와 산그리메는 더욱 더 운치를 더하며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중봉-

천왕봉을 출발한지 30여분 지나 1,874m의 중봉에 다다른다.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내려서는 급경사면은 인적이 드문탓인지 눈길이 무릅까지 푹푹 빠져들고 때로는 허리까지 눈이 차고 올라온다. 연하봉을 지나올때 천왕봉너머 Y자로 마치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케하던 깊은 눈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왕봉과 마주하고 있는 중봉은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로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며 지리산의 제일에 해당하는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중봉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눈덮힌 천왕봉을 바라다 보며 잠시 쉬었다 간다. 눈덮힌 천왕봉의 거대한 모습에서 당당함이 느껴진다.

 

써리봉-

중봉을 내려서면서부터는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 종주라 할지라도 너무 기나긴 코스이기 때문에 중산리나 백무동쪽으로 날머리를 잡아 하산하지 이쪽 코스로는 별로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내려설수록 눈의 깊이는 점점 깊어지고 써리봉까지 가는 거리도 기나긴 거리이다.

 

마치 원시적인 느낌을 주는 산속에서 때로는 감각적으로 길을 찾아 써리봉을 향한다. 높이 올라 왔던만큼 고도는 한없이 떨어진다. 주능선 종주때와 달리 큰 오르내림은 없고 거의 내림길의 연속이다. 더러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지만 큰 힘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산행중 중간중간 털보님이 챙겨준 비타민C와 복합 아미노산 단백질 덕인지 기나긴 산행임에도 별로 피로를 느끼지 못한채 하산길은 계속이어진다. 지리산 동쪽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 그리고 길게 뻗은 산줄기가 한없이 펼쳐진다. 지리산은 말 그대로 거대하고 방대한 산군임이 틀림이 없는것 같다

 

치밭목-

암반으로 우뚝솟은 1,602m의 써리봉을 내려서면서 부터도 깊은 눈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써리봉을 지나 얼마간 가다가 탐방로 표지판을 지나 작은 철계단을 내려서니 산로가 모호하기 짝이없다. 좌측 경사면을 내려서던 털보님이 깊은 눈길을 헤지고 나가더니 길이 아니랜다. 그래서 우측으로.. 앞으로.. 바위넘어.. 이리가도 저리가도 무릅위로 깊은 눈길에 빠져 들기만 한다.

 

지도를 펼치고 나침판 갖다대고.. 우측으로 다시 진행해 보지만 길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빽하여 철사다리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진행해도 도무지 산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시계 바늘은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한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진주까지 나가도 서울가는 차가 끊어져 버릴 것이고.. 그 이전에 만에하나 산로를 못찾으면 조난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제 저녁 벽소령에서도 세석까지 진행 못한걸 안타까워 하다가 이내 차가운 기온과 지친체력으로 무리하게 진행다가는 하이포써미어라도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벽소령에서 1박하게 된 걸 다행이라고 위안 했었다.

 

20분가량 씨름(?)아닌 씨름한 끝에 눈이 무릅위로 올라오는 곳을 치고 나가 다시 산로로 접어든다. 지체한 시간땜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길을 조금 더하니 치밭목대피소 1km 란 표지판이 나온다. 전력질주..... 대피소로 향하는 좁은 눈밭길이 이어지고 얼마후 눈속에 갖힌듯한 치밭목대피소에 당도한다.

 

새재마을-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으면 사람다니는 통로만 치워놓고 마치 오지 마을을 연상케하는 치밭목대피소에는 인적조차 없다. 털보님이 계속 진행할 것을 종용하지만... 오늘 먹은 것이라곤 벽소령서 양갱하나.. 빵부스러기.. 세석에서 라면 하나에 햇반하나 끓여 둘이 나눠먹고.. 장터목에서 자유시간하나.. 이러다가 배고파 죽겠다..

 

털보님이 대피소 문을 두드리니 산장지기인듯 무뚝뚝한 사나이 한명이 고개를 내민다. 황도 하나 먹고 가려다가 사발면이 보이길래 둘이서 각각 사발면 하나씩... 뜨거운 물속에서 라면발이 익고 있을쯤 무뚝뚝하던 산장지기가 밖으로 나와 말을 건넨다.

 

우리의 무리한 일정을 나무라기도하고 빨리다닌다고 좋은것이 아니라는 질책이 한동안 쏟아진다. 한마디로 오랜동안 건강하게 산행하려면 무리하지 말고 느긋하게 천천히 산행하랜다. 하기야 종주중 여러팀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모두가 2박3일 일정이지 1박2일 팀은 우리들 밖에 없었다. 화엄사-유평리 대원사 코스는 계절적으로.. 그리고 거리로 볼 땐 조금 무리가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써리봉에서 이곳을 오다가 길을 잠시 헤맺지만 중봉에서 이쪽 코스로 올겨울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눈길산행이란게 속도는 배로 떨어지고 다리에 힘이 몇 배 가량 든다고 하는데 길을 잃고 헤메다보면 체력은 소진되고 체온이 떨어지면 그대로 조난을 당하는 것이다.

 

컵라면 하나 먹으면서 교장선생님의 훈시와도 같은 공단직원의 얘기를 듣고서 새재마을 쪽으로 내려선다. 새재마을은 유평리 대원사 약간 윗쪽에 자리한 곳이다. 고도가 많이 떨어졌음에도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계단은 물론 난간 끝까지 눈이 차고 올라와 있다. 하얀 눈발길에 탄력을 붙이며 가속을 더해 날머리를 향한다.

 

무재치기 폭포 갈림길에서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은 이쪽 코스로 산객 한명이 한대피며 서 있다. 배낭을 보니 종주길에 나선듯... 3월1일부터 경방이라 공단에 인터넷으로 질의해도 답변이 없자 무작정 길을 나섰다고 한다. 새재마을을 향하던 중 5~6명 정도의 또 한팀의 종주팀을 만났다. 아마도 그들도 나처럼 가는 겨울이 몹시도 아쉬웠던 모양이다.

 

치밭목대피소에서 새재마을을 향하는 4.8km길은 고도가 서서히 떨어지며 많은 눈이 쌓여있다. 북쪽면이라 그런지 겨우내 내렸던 눈들이 녹지않고 수북히 쌓여있고 해는 산등성이 넘어 있어 어두워질 시간임에도 하얀눈에 천지가 반사되어 밝은 빛을 전해준다. 날머리를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24시간 헤치며 달려온 지리산의 지루한 눈밭길도 이제는 그 끝이 서서히 보인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작은 도전이 큰 기쁨이 되어 나에게 깊은 추억으로 남은 현실이 나의 자유로 예측하지 못하는 내일까지 행복 할 수 있으리라~~~~

 

새재마을 주차장에서 진주방향으로 나갈 차를 기다리던 중 털보님이 악수를 청한다. "수고했어..." 이렇게 우리는 각자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지리산 종주를 마무리한다.

 

 

ps : 종주전 바쁜 시간내어 나와준 마운틴.. 북한산.. 그리고 종주중 문자를 보내 힘을 실어준 여러분들.. 무사히 지리산종주를 마치고 구리에 들어 왔을때 마중나와 저녁 대접해준 달마님.. 그리고 카페에서 많은 성원을 해주신 알파인클럽 울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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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Epilogue)**

 

지리산 종주라는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어려운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든 사전에 잘 준비하고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처음 지리산 종주를 결정하고 공지를 올렸을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카페에서 요란할 정도로 성원해주시고 종주 중 문자를 보내 지친맘에 힘을 실어주실때는 고맙기도 했지만 그 모든것들이 가식을 벗어난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힘들게 종주할 것 없이 내 편안한 세상을 추구하고 수월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면 그만인걸 할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삶은 때로는 고생을 통해야 좋은 일과 흐뭇한 일로 보상한다는 진리를 깨닫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크게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풀려있는 생활들을 자극해 본다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번 지리산 종주가 일상에 지친 나의 생활에 잠시 자연에서 누리는 호사였으며 다시 돌아오는 내일을 위한 휴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근래들어 나태해진 나 자신에 균형이 필요한 삶에 지리산 종주는 가끔은 정체성을 잃을듯한 혼란속에서도 때로는 가눌수 없는 생활의 힘겨움속에서도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 . .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에서...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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