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예로부터 백두, 금강. 묘향과 더불어 한국의 4대 명산이 하나이며 둘레는 800여리에 달하며 수 많은 고봉들을 거느리고 동서로 뻗은 45km의 장대한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주능선은 단일 산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높은 산인 지리산 종주길에 오른다.
용산역을 출발한 열차는 각 정류장을 거치며 03시23분 우리의 목적지인 구례구역에 도착한다. 시골마을 아담한 역사....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니 싸늘한 밤공기가 폐부 깊숙히 파고 든다.
역사 주변에는 지리산을 종주하려는 사람들이 한겨울...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럿 눈에 띄이고 생업전선에 한창인 택시기사들이 손님들을 호객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디 가시냔 택시기사의 질문에 성삼재.. 라고 하니 그곳은 이틀간 눈도 많이 내리고 곳곳이 심하게 얼어붙어 차량이 도처히 올라갈수 없어 통제를 한다고 한다. .......?.......
어찌 첨 출발부터 뭔가 삐끗거린다는 좋지않은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기나긴 종주길... 화엄사 방향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종주길이 한층 더 멀어지고 일정에도 차질이 올 수 있단 생각에 작은 걱정이 앞선다.
예전 성삼재 방향으로 관광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화엄사에서 종주를 시작하였지만 대게의 경우 2박3일이거나 3박4일 일정으로 잡기에 1박2일을 잡은 우리로선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리오~ 택시기사 말처럼 성삼재로 가려면 4월까지 기다리라니 여기서 4월까지 있을 수도 없고...... 역사 대합실을 들락날락 거리다가 대합실 한켠에서 빵 한조각으로 뱃속을 무장한체 화엄사 뒷편 연기암으로 산행들머리를 잡고서 이동한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반복하여 어둠을 헤치며 달리던 택시가 산행들머리인 화엄사 뒷편 연기암에 우리들을 내려놓는다. 별빛도 달빛도 잠들고 화엄사 연기암의 불경소리도 잠들어 적막감이 감돈다.
역사에서부터 몇마디를 주고받고 택시에 동승했던 젊은이와 털보님과 일행이 되어 눈이 하얗게 덮힌 산길따라 1차로 노고단을 목표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동승했던 젊은이는 대학 4학년생인 28세의 청년으로 서울 수유리에 살며 졸업을 앞두고 진로문제 및 자신의 의지를 테스트하고자 지리산 단독종주에 나섰다고 한다.
지리산종주... 특히 혹한기 겨울철 동계 지리산 등반에 나선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체력을 테스트하고자... 아니면 답답한 마음속의 고민과 근심 걱정을 지리산 자락에 묻어두고자... 또는 겨울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등등.....
연기암-
완만하게 시작되던 등산로가 길을 더할수록 가팔라지기 시작하고 높이 오를수록 눈의 두께도 점점 두터워만진다. 구례역에서 우리들보다 먼저 출발했던 일행들을 간간히 제치며 랜턴불빛에 시선을고정시킨채 노고단을 향한다.. 전날 내린눈으로 산로가 아리송한 곳이 더러있어 몇번은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고달픈 일을 몇차례 반복한다.
노고단-
노고단 1.5km지점쯤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고 하얀눈을 살포시 뒤집어쓴 산죽군락지가 나타나며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눈은 발목위로 차오른다. 노고단 1.0km지점에 이르니 성삼재에서 노고단 으로 이르는 넓은 도로가 나타나고 자그마한 탐방지원쎈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온 세상이 하얀설국....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오른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순탄한 눈길따라 얼마간 길을 재촉하니 노고단 대피소가 하얀 눈속에 마치 알프스의 어느 마을 별장처럼 한폭의 그림속 풍경을 연출하며 눈에 들어온다. 대피소안은 미리온 산객들이 식사준비로 분주하고 우리들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 첫날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취사장안은 급수시설 및 히터가 들어와 얼었던 몸이 봄날 눈녹듯 사르르르 녹아내린다.
아침식사를 마친후 지리산 종주의 시발점이며 산자락의 끝은 우리가 올라왔던 천년 고찰 화엄사가 자리해 있고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이곳 노고단에서 본격적인 종주가 시작된다.
노고단대피소 바로앞 표지판에는 천왕봉25.9km라 표시되어 있지만 이것은 GPS 측정거리인 직선 거리일뿐!! 실제거리는 이것보다도 훨씬 더 기나긴 여정길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넓다란 오름길을 올라 노고단 고개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니 성삼재 방향의 봉우리들이 하얀 백설기를 뒤집어 쓴 듯 온천지가 뽀얗고 눈부신 코발트빛 하늘아래 하얀눈을 곱게 뒤집어쓴 캐넌(돌탑)이 멋지게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서 추억의 흔적을 남기며 그 앞에 넓다란게 우뚝솟은 노고단 정상을 바라다본다.
돼지령-
노고단을 내려서 돼지령으로 향한다. 아스팔트 신작로처럼 넓다랗던 등산로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겨우내내 내린 많은 눈들이 내려 녹지않고 쌓인데다가 월, 화.. 많은 눈이 내려 눈길의 깊이를 가늠 할 수가 없다.
단지 다져진 산로를 이탈이라도 하면 허벅지 위로 한없이 눈길에 빠져든다.
좁다란 능선길이 부드럽게 계속 이어지고 고도차도 별로없는 눈밭길을 한동안 열심히 걸어간다.
임걸령-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샘은 얼어 붙어있고 샘 위로는 많은 눈이 쌓여 어디가 샘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예전 당일 종주시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치며 탄력을 받아 가속을 더하며 오다가 이곳 임결령 부근이 너덜 암릉지대라 속도가 떨어졌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많은 눈으로 뒤덮혀 전혀 너덜지대임을 알 수가 없고 그냥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임에 불과하다.
하얀 눈밭길 위로 겨울해가 쏟아진다. 눈부신 하얀설원 위로 파란 하늘이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노루목-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천연의 암두가 전망대를 이루고 있어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해발 1,500m의 노루목 암두에서 피아골을 내려보노라면 원시림 속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노루목을 향하는 길엔 찬바람에 매섭게 몰아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얀 뭉게구름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쪽빛 하늘아래 햇빛에 반사된 눈꽃들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내게로 다가온다. 가지가지에 쌓인 눈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목덜미를 파고들고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싸늘한 기운을 전해준다.
삼도봉-
경상남도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의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지리산의 구역을 구분 짓는 곳.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은 국립공원 관리 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지리산의 경계로서의 역할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삼도봉을 오른다.
노루목 전,후로부터 시작되었던 차디찬 바람결이 점점 더 드세진다. 딱!! 딱!! 부러진 나무가지들이 부딪히는소리와 갈라진 나뭇가지들이 마찰되는 기이한 소리... 게다가 혹독한 칼바람은 나무가지와 능선 위에 쌓인 눈들을 일으켜 세워 눈보라를 몰아치게 하며 혹독한 지리산의 한겨울을 체험케한다.
점점 드세지는 바람소리는 전설의 고향에 나옴직한 귀신 곡소리를 연상케하고.. 바람결에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체온은 점점 떨어져 한기를 느끼게 하고 바람결에 날린 눈보라는 우리들을 반백의 인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동계 등반사고 중 가장 흔한일이 하이포써미아(저체온증)이다. 산행중 지친 체력에 차디찬 기온을 접하면 체온은 떨어지고 우리 기본 체온보다도 3도 이하만 떨어지게 되면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한 경우는 사망으로까지 이르게된다. 비근한 예로 수년전 국망봉 산행사고나 얼마전 소백산 산행중에서도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체온이 떨어지고 얼굴이 시리다 못해 얼어 붙는다. 장갑낀 손 조차도 시리고 속도를 내도 땀은 나지 않는다. 얼어붙은 얼굴은 경직되고 급기야 눈물까지 흐른다. 가속을 더해 삼도봉에 올라 3도의 표시가 있는 삼각 표지점에서 디카에 흔적을 남긴 후 이내 발걸음을 다시 동쪽으로 옮겨놓는다
화개재-
삼도봉에서 얼마간 내려오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기나긴 계단길을 내려서니 넓다란 평지가 나온다. 이곳이 그 옛날 지리산 능선중에 있던 장터의 하나로서 경상도 연동골과 전라도의 뱀사골에서 상인들이 올라와 물건을 교환하던 장터이란다. 이 높은곳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르내렸던 옛 우리 선조들의 억척스런 삶이 잠시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곳이 바로 조영남이 부른 노래 "화개장터"인 곳이다.
이곳에서 흰눈이 수북히 쌓인 넓다란 평지를 바라다 보며 오른손엔 초코렛 하나.. 왼손엔 우리들만의 간식을 하며 잠시 쉬었다 간다. 잠시 쉬는 도중 반대편 백무동쪽에서 출발한 종주팀을 만났는데 오는 도중 눈길이 깊어 허리까지 눈이 빠져들어 엄청 고생스러웠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토끼봉-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엄청나게 고도가 떨어지더니만 토끼봉까지 오름길은 한없이 이어진다. 백두대간의 특성상 내려가면 다시 올라서야 하는 것이기에 내림길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서 고도가 자꾸 떨어질수록 마음은 불안하다. 왜냐하면 떨어진 만큼.. 아니면 그 이상 더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눈밭 오름길...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깊은 눈길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급한 경사면에서는 자꾸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눈길에서는 속도도 배로 떨어지지만 다리에 들어가는 힘은 평소보다 몇곱절 힘이 더 들어만 간다. 하지만 어쩌리오..... 우리에겐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뿐!!!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의 토끼봉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명선봉-
토끼봉을 지나오면서부터는 능선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던 차디찬 칼바람도 잦아들고 눈보라도 일지 않는다. 연하천 대피소 4.4km지점부터는 별로 쉬지도 않고 꾸준히 진행했건만 좀처럼 연하천대피소가 나타나질 않는다. 보통 4.4km같으면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달할 거리이지만 이곳은 GPS측정거리인지라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근 2시간40여분이 걸렸다.
능선 옆으로는 바람에 눈들이 몰려 허리까지 눈이 차는 곳도 많았고 바람결에 흩날리며 눈보라를 뒤집어 쓴 암반들이 겨울의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철제 사다리 계단을 올라서 암반길을 돌아서니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며 햇빛에 반사된 눈꽃은 더 없이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과 하얀 눈꽃 너머로 드디어 연하천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연하천-
연하천의 위치는 토끼봉과 명선봉 삼각고지, 벽소령 사이의 능선상 가운데 명선봉 아래에 있다. 토끼봉에서 6㎞거리며 벽소령에서도 6㎞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1,500m이상의 고산 지대인데도 여름이면 맑고 시원한 계류가 흐르며 남..북..서.. 3면이 아늑하게 감싸여 있는 숲속의 연하천은 널따란 평지를 이루고 있다.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중간에 위치한 높은 고산지대로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구름속을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하천 대피소 주위의 나무들이 곱게 눈꽃을 덮어쓰고 파란하늘과 극명한 색상대비를 이루며 쉬어갈 우리를 반기며 맞아주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전 당일 종주시 식수만 보충하고 잠시 스쳐 지나가던 곳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줄이야~ 노고단 대피소도 그랬지만 겨울의 연하천대피소 역시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능선에 위치한 탓인지 포근함을 안겨다준다.
대피소 취사장에 들어서니 다른 팀의 선발대인듯한 사람이 털보님께 자기 일행의 인상 착의를 얘기하며 진행정도를 묻는다. 우리들이 노루목 사거리에서 만나 잠시 얘기 나누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곳 연하천대피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할때까지도 도착하지 못했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 얻어 먹었음. 맛?==>good)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한지 6시간 여만에 이곳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한다. 성삼제에서 출발하려 했던것이 화엄사 방향에서 출발했던터라 예상시간 보다 많이 늦은 연하천도착!!! 핸펀 불통지역이 많은지라 꺼두었던 핸펀을 켜니 문자음 줄줄이 울려퍼진다.
아무 생각없이 오로지 앞만보고 진행해 왔지만 어디에서가 우리를 격려하고 성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피곤했던 심신에 갑자기 힘이 실린다. (통화권 이탈이 자꾸 되는 바람에 진작 답들 못드려 죄송들합니다.)
아침 메뉴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식단이 점심에도 이어진다. 사리곰탕면 하나에 만두 두개..그리고 찬밥 조금..... 식탁이 있는 노고단대피소와 달리 이곳엔 식탁도 없고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취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한술 뜨고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열차안에서 역사 구간구간마다 방송을 하다보니 잠도 제대로 못잤고 04시40분부터 시작되었던 산행이기에 조금 피로감이 느껴지고 허벅지에도 뻐근함이 느껴진다.
아직 초반이나 진배 없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하나 싶고,,, 슬슬 완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아직 갈길은 먼데..... 취사장안 동그란 작은 나무위자에 앉으니 졸음이 몰려오고 갑자기 집 생각이 절로난다. (이런.. 세상에.....)
형제봉-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후 식수를 보충하고서 동쪽 능선따라 삼각봉과 형제봉을 향한다. 삼각봉과 형제봉은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 사이에 있는 커다란 두개의 봉우리로서 연하천에서 벽소령 3.6km 사이에 우뚝 솟아있다. 졸리움과 다리의 뻐근함에 걱정이 앞섰지만 식사를 한탓인지 몸은 한결 가볍고 발걸음 역시도 오전과 다르게 가뿐해진다.
삼각봉 전후로 동서로 뻗은 지리산의 연봉들이 더러 보이고 좌우로도 줄기에 줄기를 뻗은 지리산 산군들이 산그리메를 그리며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가지 가지마다에는 눈꽃이 수를 놓고.. 보이는 연봉들은 하얀 눈이불을을 살포시 덮어쓴양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봉우리를 넘는 중간 중간에는 기암들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웅장함을 과시한다. 형제봉 암릉길을 뒤로 돌아서니 벽소령대피소가 바로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벽소령-
예전 당일 종주시 그냥 휙 지나쳤던 벽소령이였지만 오늘은 잠시 쉬어가려 대피소에 드른다. 대피소 관리사무실안에서 관리공단 직원이 어딜 가려냐고 묻는다. 의기양양(?)하게 세석까지 간다하니 3시 반 이후로는 이곳을 지나칠 수 없다고 한다. 왜 못가냐며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요래 사정하고 조래 사정해도 제발 좀 통제에 따라달랜다.
시간이 지나서 안일지만 이곳 지리산에서는 동계 인명사고가 비일비제하다고 한다.
나역시 몇시간 지나지 않아 내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게된다. 벽소령대피소 도착시간이 오후 4시39분... 시간도 많고 뭘하며 지내나 싶었지만 그것 역시도 단순한 생각이였을뿐..
세석대피소에 예약을 해두었지만 일단 그것은 무시되고 다시 이곳에서 1박을 신청한다. 깔고 덮을 담요 2장씩... 목재로 지은 대피소안은 히터를 틀어놨는지 온기가 느껴진다. 숙박동은 이층 침상구조로 되어있고 각층 우측은 여자 좌측은 남자가 취침하게 되어있다.
첨엔 1층을 배정받았지만 따뜻한 공기가 가벼워 위로 올라간다는 얅팍한 상식이 있는터라 2층으로 숙소 배정을 변경하고 보따리풀러 민생고 해결에 전력을(?) 다한다.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에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km에 달하는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이곳 벽소령에서 지리산 종주의 첫날 밤을 맞이 할 것이다.
산행들머리 화엄사 뒷편 연기암 도착 04시40분 벽소령대피소도착 16시39분!! 거의 12시간 만에 오늘 하루 일정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출발점이 길어졌고 눈길산행이라 속도에도 약간은 문제가 있었겠지만 노고단대피소와 연하천대피소에서 식사한것 말고는 별로 쉰 시간도 없이꾸준히 진행한 것 치고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 되어버렸다.
아울러 내일의 기나긴 일정이 암담한 현실로 다가온다. 분명 오늘보다는 체력이 떨어질 것이고 가야할 거리는 오늘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취사도구를 챙겨 밖으로 나가니 벽소령 아래녁에서 치고 올라오는 칼바람이 여간 매섭지가 않다. 대피소안에 설치된 디지털 온도계가 -13.5도를 가르키고 바람의 세기를 보아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영하25도 정도는 족히 되리라 느껴진다.
대피소 아래 위치한 취사장안도 썰렁함에 냉기가 느껴지고 그곳에서 아침 점심과 진배없는 메뉴로 식단을 준비한다. 싸늘한 기온에 라면하나 끓일 물 데우는데도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대피소안 침상으로 들어간다. 양치질도 좀 해야겠고 세수라도 좀 했음 좋겠는데 대피소의 물은 얼어 잘 나오지도 않고 바깥에 몰아치는 매서운 날씨를 생각하면 바깥에 담배피러 나가기조차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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