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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동심은 아름다워라>


1986년. 이란의 시골 마을에 사는 여덟 살 소년 아마드는 숙제를 하려다 가방 속에서 두 권의 공책을 발견한다. 실수로 짝꿍의 것까지 가져왔다. 숙제는 반드시 공책에다 할 것, 안 그러면 퇴학을 시키겠다는 선생님의 경고가 떠올라 아마드는 짝꿍의 공책을 돌려주러 길을 나선다.

짝꿍이 사는 마을 이름만 알지 주소는 모른다. 하지만 멀고도 낯선 곳이라 사람 이름 하나만 가지고 집을 찾는 건 어렵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짝꿍인 네마자데의 집을 물으며 숨차게 뛰어다니지만 수확이 없다. 그 동네에는 네마자데라는 이름이 흔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미 날은 저물었다.


나도 저 나이 때에는 저랬다. 집에 유선 전화기는 있었지만 여덟 살짜리가 용건을 전화로 처리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내 실수 때문에 친구가 퇴학당할까 봐 초조해져서 무작정 뛰쳐나갔을 거다. 결국 종일 고생만 하고 성과 없이 돌아왔대도 그런 시간들로 인해 우리는 한 뼘씩 자란다.

온 가족이 전화기를 공유했던 시절이라 교우관계도 공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에 조언 같은 참견을 견디며 눈이 뜨이고, 위로도 받았다. 컴퓨터는커녕 집 안에 텔레비전도 한 대뿐이라 채널의 선택권이 내게 오는 건 불가능했다.

주말에 방영하는 영화는 밤 10시에 시작이라 부모님의 눈치를 심히 봐야 했다. 며칠 전부터 온갖 아부와 심부름으로 방영권을 따놨는데 하필 그 시간에 정전이 됐다. 깜깜한 동네를 보며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놓친 방송은 언제 다시 해줄는지 알 도리가 없고,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주어진 상황에 나를 맞춰야 했기에 절실함으로 매 순간이 애틋하고 소중했다.


아마드는 짝꿍의 집을 안다는 노인을 만난다. 숨이 차 느릿느릿 걷는 노인의 걸음 속도에 맞춰 네마자데의 집에 당도하지만 그곳은 이미 아마드가 들렀던 동명이인의 집이다.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준 것처럼 옷 속에 감추고 자신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돌아온다. 허탕을 친 게 화나지만 그보다는 노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서서다.


몇 년 전, 전국을 트로트 열풍에 몰아넣은 종편 방송은 7명의 남자 트로트 스타를 배출했다. 그중 가장 연장자가 훤칠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직 애인이 없다고 하자 방청석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때 7명 중의 막내가 “애인이 없다는데 왜 박수를 치지?” 하며 어리둥절해했다. 여성 팬들이 그가 내 차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로 들떠 열광할 때 열세 살 소년은 마흔이 넘은 그의 외로움을 걱정했던 거다.

동심은 아름답다. 영화 속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주지 못한 대신 밤을 새워 짝꿍의 숙제까지 해간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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