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상관없이 행정처분 없어"…기존 입장 뒤엎고 '특례' 적용키로
의사불패 재현될까…2020년엔 휴진 멈추는 대가로 의대증원 포기
정부가 다섯 달 가까이 병원을 떠나 있는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직한 전공의가 재수련을 할 경우 정부는 특례를 마련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계획이다. 기계적 법 집행을 강조했던 정부가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전공의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의사 불패'를 용인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조 장관은 "중대본에서는 수련 현장의 건의와 의료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늘부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예외 없는 처벌을 하겠다고 나선 정부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넉 달 전만 해도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특정 직역에 굴복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법치주의를 바로세우겠다"고 했다.
의료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소임을 다한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복귀자에 한해서만 행정처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전공의들은 면허정지와 같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규정까지 손봐 이들의 전문의 자격 취득을 돕겠다고 했다. 조 장관은 "복귀한 전공의와 사직 후 올해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수련 특례를 적용하겠다"며 "수련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각 연차별, 복귀 시기별 상황에 맞춰 수련 특례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공의 행정처분을 중단하고 하반기에 돌아올 전공의에게는 수련 특례를 인정해달라"는 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각 병원에서 사직 처리된 전공의들은 9월 모집에 응시하면 특례를 적용받는다. 현행 규정대로면 사직한 전공의는 1년 내 동일 과목, 같은 연차에 지원할 수 없다.
고육지책 통할까…전공의 출근율 8% 불과
정부가 입장을 뒤엎으면서까지 전공의에 대한 면죄부를 준 이유는 장기화된 의료 공백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다. 조 장관은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전문의가 제때 배출되도록 수련 체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고심 끝에 내린 정부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고육지책이 전공의들에게 통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방침의 원점 재검토를 고수하고 있는 데다, 하루빨리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서다.
7월4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출근율은 8%에 불과하다. 한 달 전 출근율인 7.4%에서 0.6%포인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정부의 의료개혁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돼 왔다. 2020년 총파업 때는 의사들의 휴진을 멈추는 대가로 정부가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포기했다. 의사 국가시험을 거부한 의대생에게는 재시험 기회까지 줬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에도 의료계가 휴진에 참여하자 의대 정원이 순차적으로 줄었고 이후로는 동결된 바 있다.
이미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가 재조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복지부는 전공의가 정부의 의료개혁 논의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면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조 장관은 "전공의 여러분이 의료계와 함께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한다면 2026학년도 이후의 의료 인력 추계 방안에 대해서는 더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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