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차량 운전자 A씨(68)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사고 직후 차량이 멈춰 섰다”며 급발진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2일 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 등을 보면 A씨가 운전하던 제네시스 차량은 전날 오후 9시 27분쯤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200m가량 역주행했다. 이 과정에서 차량 두 대를 들이받고 인도의 보행자를 덮쳤다.
A씨는 경찰에 공식적으로 급발진이라고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A씨가 경찰 조사관들에게 급발진 관련 진술을 한 부분은 없다”라며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전달되진 않았지만 (급발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조선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100% 급발진”이라며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1974년 면허를 취득했으며 현재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다만, 사고를 목격한 시민들은 “급발진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보통의 급발진 사고는 차량이 계속 가속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벽이나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반면 이날 CCTV 영상 등을 보면 사고 직후 차량이 감속하다가 스스로 멈춰 선 것처럼 보인다.
급발진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엔진에서 비정상적인 굉음이 나며 운전자의 의도와 다르게 자체적으로 빠르게 발진하는 현상을 말한다. 아직 급발진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엔진제어유닛(ECU)의 결함이라는 주장이 많다.
운전자는 급발진이라고 주장하지만, 운전자가 실수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는 경우도 있다. 이에 최근엔 가속페달 부근에도 블랙박스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법상 사고 원인이 자동차 결함으로 의심될 경우 소비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5건 발의됐으나 모두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리콜센터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14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사고 791건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현재까지 한 건도 없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의심 상황이 발생할 경우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 전에 페달에서 발을 떼고 이후 한 번에 세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엔진의 동력을 끊기 위해 기어를 중립으로 변경하고 주차 브레이크를 이용해 차를 세우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조치에도 차량의 속도가 줄지 않는다면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가드레일 또는 중앙분리대에 충돌시켜서라도 정차하는 게 좋다. 급발진 상황에서는 비상등과 경적을 활용해 주변 차량과 보행자들에게 위기를 신속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차량이 완전히 멈췄다면 꼭 시동을 꺼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발진은 원인을 밝히기 어렵고 본인의 실수를 면하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경우도 있다”며 “30초에서 1분 이상 발생한 급발진은 블랙박스로 조사할 수 있으나 이번처럼 순식간에 발생한 사고는 급발진 여부나 경위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경찰의 조사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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