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결탁에 우리 정부가 마침내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재검토 카드를 꺼냈다. 그동안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줄곧 규탄해오면서도 '인도주의적 지원' 원칙아래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지만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분명한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이번 조약을 사실상 군사동맹의 성격이 있다고 봤다. 2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한 외교안보 고위관계자들의 치열한 논의가 진행됐다.
침공시 '자동 군사개입' 아니라도 동맹에 가까워진 북·러
문제가 된 조약의 4조가 1961년에 북한과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맺었던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961년에는 '지체없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군사적 또는 기타지원을 제공한다고 돼 있는데 이번 건 유엔헌장 51조, 국내법 규정 이야기도 있어서 자동군사개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1961년 조약에는 못 미친다"고 밝혔다.
조약 4조에서 군사적 원조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해'라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자신들의 상호 원조가 유엔헌장 제51조가 규정한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으로서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다는 점을 주장하는 동시에 러시아 상원의 결정에 따라 해외에서 군사력을 쓸 수 있게 명시한 러시아연방법도 조건으로 달아놔 '자동개입'에 제동장치가 마련됐다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어떻든 이번 것도 군사적인 지원을 포함한 상호지원을 이야기하고 있고 해서 동맹에 가까워 보이기는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에 '첨단 정밀군사장비' 제공 등 러시아 아픈 곳 찌를듯
물론 우리 정부가 무기지원을 재검토한다고 해서 당장 우크라이나에 대한민국이 보유한 포탄이나 전차, 미사일 등 살상 무기가 건너간다는 건 아니다. 이 관계자는 "무기지원은 여러 옵션이 있고 살상이냐 비살상이냐를 떠나서 다르게 분류할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있다"며 "러시아 쪽에서도 차차 아는 게 흥미진진하지 (우리 정부가) 미리 답줄 필요가 없다. 차차 알게 해야 더 압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지뢰탐지기와 수송장비 등 살상무기와 거리가 있는 것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각종 정밀장비 등이 제공될 수 있다. 첨단 기술력을 접목한 방위산업을 바탕으로 우수한 장비를 보유한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군이 꼭 필요로 하지만 그만큼 러시아에는 타격이 될 수 있는 물품들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러시아를 '배려'해서 우크라이나에 비교적 단순한 비살상 군사장비만 지원했다면 앞으로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다양한 무기 등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우리 정부는 무기지원 재검토와 같은 독자적 대응과 함께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도 적극 가동하고 있다. 이미 미국 등과는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기 전부터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자유진영 국가들 간의 국제공조가 적극 논의될 전망이다.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커짐에 따라 경계태세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한미연합훈련을 침공으로 간주하는 등 러시아와 조약을 발판 삼아 북한이 오판하고 도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반도 침공? 미군이 있는데…정부, '북·러 동상이몽'에도 주목
다만 설사 그렇다해도 러시아가 실제 군사적 개입을 하기는 어렵다.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여력도 없거니와 한미동맹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한 안보전문가는 "러시아가 북한의 (한미연합훈련 등을 문제 삼아 러시아를 부추기는) 그런 장난 때문에 여기와서 미군하고 전쟁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북러조약에 대한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동상이몽 여부에도 주목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막상 푸틴 대통령 본인은 '동맹'이란 말을 전혀 쓰지 않고 있고 김정은 총비서 혼자서만 열심히 동맹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이건 조금 구체적인 내용을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즉 러시아는 어떻게든 '동맹'이란 말을 안하고 조약 내용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언론에 노출된 푸틴 대통령은 "침략 당하면 상호지원한다"고 거론하면서도 '군사적'이라는 말은 뺐다는 점도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눈여겨 보는 부분이다. 러시아는 조약 내용 공개에 방어적인데 반해 북한이 이를 모두 공개한 것도 양측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군사적 지원이 절실해 조약을 맺었지만 아쉬운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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