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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읽다
'버닝썬 사건' 다룬 BBC 다큐 1000만이 한국 언론에 남긴 질문
뭘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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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버닝썬 사건’의 본질인 뿌리깊은 여성혐오에 주목
BBC측 “선정적 헤드라인 넘어 본질 아우르는 보도 필요”
‘피해 당사자 목소리 배제, 자극적 묘사’ 한국 언론 행태 벗어나야

"BBC Eye와 BBC 코리아가 '버닝썬' 프로젝트를 처음 논의했을 때, 우리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무엇이 새로운가'였다. 우리는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넘어 사건의 본질을 아우르는 심층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년 이상 취재와 논의를 거친 결과, 뉴스 가치가 크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앵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작한 영국 공영방송 BBC 탐사보도팀 'BBC Eye'의 선임 프로듀서 모니카 간시(Monica Garnsey)와 마크 퍼킨스(Marc Perkins), 이웅비 BBC 코리아 편집장(이하 BBC팀)이 지난 18일 다큐 제작 계기를 묻는 미디어오늘에 한 말이다. BBC는 5년 전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어느새 잊혀진 '버닝썬 사건'을 다시 주목했다. 영상은 19일 기준 유튜브 'BBC News 코리아' 채널에서 조회수 1005만 회를 넘겼다.

BBC가 주목한 '새로움'은 무엇일까. 부제목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BBC는 '버닝썬 사건'이라는 성범죄를 추적하고 증언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큐 중심에 뒀다. 버닝썬 사건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클럽 '버닝썬'의 사장인 가수 승리와 그 안에서 벌어진 마약 이용 성착취, 성매매, 그의 동료 가수 정준영·최종훈 등의 성폭행·불법촬영, 연예인과 경찰의 유착 등이 겹겹이 엮여있는 사건이다.

BBC는 버닝썬 사건 핵심이 뿌리깊은 여성혐오라고 지적한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버닝썬 사건을 '연예인', '마약' 등 자극적 소재를 중심으로 보도했지만, BBC는 사건의 본질이 여성혐오라는 점을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갔다. 여성혐오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어렵지만, 국내 언론이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BBC의 재해석은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느껴졌다고 볼 수 있다.


계속되는 악성 메일과 위협에도 사건을 폭로해 낸 SBS 연예뉴스의 강경윤, 스포츠서울의 박효실 두 여성 기자가 전하는 취재 이야기는 다큐를 이끌어가는 중심 장치다. 강 기자는 정준영의 단체채팅방 대화 내용을 확보해 보도했고, 박 기자는 정준영이 성범죄로 피소된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가수 고 구하라씨가 경찰과 연예인들의 유착관계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버닝썬'의 성폭력 피해 당사자는 "알고 있어야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BBC의 인터뷰에 응했다.

원은지 추적단불꽃 '단'은 17일 미디어오늘에 "구하라씨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줬다는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줬다. 그 역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한 것"이라며 "한국 기성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가 이번 BBC 다큐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뿌리깊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항하고 폭로한 게 결국 여성·피해당사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이 BBC 다큐의 높은 조회수에 집중하지만, 다큐의 주된 시청자층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BBC팀은 "BBC는 조회수가 성공의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 구성과 시청 시간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조회수 1000만 회는 물론 대단한 성과지만, 기존 뉴스 보도의 주류 소비층이 아닌 18~34세 여성이 이번 다큐의 주된 시청층이었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후속보도 이어간 BBC "보도됐다고 마침표 찍히는 뉴스는 거의 없어"

차츰 한국 언론에선 버닝썬 사건이 잊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BBC는 가해자들의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 수위와 '버닝썬' 방식의 성착취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다큐는 지난 3월 정준영의 만기출소 등 가해자들의 출소 시기와 맞물려 공개됐다.

복잡한 버닝썬 사건을 2016년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보여주는 점도 몰입감을 높였다. 그 안엔 다양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유한 사실관계가 촘촘히 담겼다. BBC는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3년을 투자했다. BBC팀에 따르면, '버닝썬' 다큐 프로젝트는 런던의 BBC Eye팀이 주도하고, 서울의 BBC 코리아, 영국과 한국의 다양한 프리랜서들이 참여했으며 BBC 내에서도 큰 장기 프로젝트였다. 적은 인력이 짧은 기간에 제작해내야 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BBC팀은 "이번 영상의 파급력은 단순 사실관계를 타임라인식으로 보도하는 대신, 여러 당사자의 목소리를 다층적으로 구성해 공감대와 몰입감을 높인 덕분이라고 판단한다"며 "역설적으로 기획 보도는 '창의력'이 중요하다. 결국 시청자들도 뉴스 포화로 파편적인 정보값을 가진 상태이기에, 창의적인 구성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경찰 윤규근이 무죄로 풀려나거나 가해자들이 경미한 처벌을 받는 등 일련의 과정엔 납득할 수 없는 지점들이 계속해 등장한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 등 9개 혐의에서 모두 유죄였으나 최종 선고는 18개월 징역에 그쳤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18일 미디어오늘에 "결국 '사법부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며 "관련된 사람들의 형기가 대체로 끝났다는 소식이 비슷한 시기로 알려졌고 '사법적 정의가 안 이뤄졌다', '처벌받을 사람들이 다 처벌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다큐를 이야기하게 했다"고 말했다.

다큐는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당시 가해자들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온 후 본인의 피해 영상이 있을까 우려한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법정소송 과정에도 주목했다. 버닝썬 사건을 통해 알려진 공권력 유착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담았다. 동료 가수 설리의 죽음 후 사망한 구하라씨의 이야기도 비중있게 담았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 '버닝썬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지난 15년간 불법 촬영을 포함한 성범죄는 11배나 증가했다"는 자막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다큐는 변한 게 없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전직 버닝썬 직원은 BBC에 "예전 버닝썬과 지금 차이점이 거의 없다"며 "그때 있었던 일이 아직도 지금 생기고 있다. 클럽에선 아직 똑같이 '물뽕'(마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BBC팀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의 후속보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그들은 "보도되었다고 해서 끝나는, 마침표가 찍히는 뉴스 이야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뉴스는 보도 이후에도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는 현재진행형"이라며 "이번 탐사보도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의 경우 후속보도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다. 김수아 교수는 "사건 직후는 물론 해당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지속적 환기가 필요하다"며 "버닝썬 관련된 논의가 유명인을 중심으로만 이야기되고 피해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실한 후속보도에서 한국 언론이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을 취재한 두 여성 기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폭력과 위협은 여성 기자를 향한 심각한 괴롭힘 행태를 보여준다. 강 기자는 다큐에서 "(팬들은) 나를 3년 동안 괴롭혔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정씨의 팬들과 남성들로부터 공격을 받던 중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박 기자는 "새벽 2시부터 심할 때는 오전 5시까지 세네시간 정도 계속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안 받았더니 메신저를 통해 음란 사진이나 욕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수아 교수는 "다큐엔 당시 취재가 어려운 환경이었던 점이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이러한 환경에서 기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없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한국 사회의 언론사가 취재기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은지 추적불꽃단 '단'은 한국 언론에 "피해당사자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자극적인 피해 묘사로 엄벌주의를 부추기거나, 가해자 위주로 보도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젠더 폭력을 세상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 여성들과 피해당사자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을 때 폭력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보았으니, 사회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보도가 무엇일지를 '받아쓰기' 정도로 공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언론이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윤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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