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 들 금요일 월루들 잘 하고 있어?
나른하고 쳐지는 공기에 휴식이 필요해서 점심시간에 잠시 눈 붙였다가 살짝 가위를 눌린 터라
갑자기 예전 집에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이렇게 글을 써봐
딱 봤다, 체험했다, 라는 내용은 아니지만 나름 살면서 직접 겪은 일 중에는 가장 소름 돋는 일이라서
톨들이 보기엔 식상하고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소소하게 심심풀이로 읽어봐 줬음 좋겠어.
상황을 좀 설명하고 싶어서 긴 글이 될 거라는 거 미리 미안해.
우리집은 내가 20대 중반 시절 한 번 망했었어.
그래서 아빠는 지방 현장으로 일을 다니시고 엄마랑 나랑 여동생은 서울 외곽에 원룸을 얻어서 함께 살고 있었지
나도 동생도 취업을 하고 엄마도 이런 저런 일을 해 가면서 다들 열심히 노력했어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고 나가게 되고 근처에 집을 마련해서 살았고 조카 둘이 생겼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원룸에 산지 10여 년 만에 근처 재개발 된 빌라 타운에 방 3개 짜리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어.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신축이라 매우 깔끔했고 그 동안 원룸에 살면서 각자의 공간을 너무 갈망했던 터라
우리는 집을 보고 만장 일치로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지.
조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해서 거의 우리 집에서 살던 시기라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게 된 게 너무 좋았어.
아빠도 지방을 전전하시다가 좋은 분을 만나서 수도권 현장에서 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셔서
드디어 함께 살게 되었어.
그렇게 우리는 새 생활을 꿈꾸며 이사 준비를 했고 드디어 대망의 이사 날이 도래 하였지
나는 가톨릭 톨이긴 한데 우리 집이 외가 쪽으로 여자들이 약간 무속 쪽인 무언가가 있거든
그래서 인지 그런 민간 신앙에 대한 걸 무시하지 못하고 살아. (물론 나는 냉담 신자 20년 차 이긴 해 ㅎㅎㅎㅎ)
이사 갈 때 집안 대주(? 맞나?) 가 밥솥을 들고 전날 먼저 들어가서 밥을 해야 하는 게 있다길래
아빠는 그 때도 지방에 일 때문에 가 계셨던 상황이라 내가 전날 밤 이사할 집에서 밥을 하고 혼자 잠을 자게 되었어.
그 때는 내일 이사가 너무 기대되는 상황이었고 거의 10년 만에 생기는 내 방이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 가서 밥 짖고 나름 잘 살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원하면서
이불 펴고 잠이 들었지.
그런데 그날 새벽에 자다가 가위가 눌린 거야.
원래 가위가 심심찮게 눌리던 사람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는데
평소에 지나가 듯 느낌만 오는 가위가 아니라 정말 본격적으로 콱 눌렸었어
딱히 뭔가 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새 집에서 첫 날 밤에 그렇게 가위를 눌리게 되니 조금 찝찝하긴 하더라구
그래도 다들 새 집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따로 얘기하진 않았고
다음 날 이사도 잘 마쳤어.
그렇게 새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전보다 쾌적한 생활에 만족했지.
나도 내 방을 꾸미면서 하루하루가 너무 좋고 즐거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즐거움은 슬슬 줄어들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어..... 내가 요즘 가위를 너무 자주 눌린다는 걸......
원래도 간간히 눌리며 살아왔지만 그 빈도가 너무 잦아진거야
거의 매일을 가위에 눌리고, 묘한 꿈을 꾸고 (내용은 일관성 없는데 모두 부정적인 느낌이 가득한....)
즐거움이 가득할 때는 그러려니 지나친 것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문득 이상하다고 느껴지게 된 거지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라서 대충 무시하고 지냈던 거 같긴 해.
가족들에게도 굳이 얘기해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서 혼자 그러려니 하고 지냈어.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가위가 눌려서 잠에서 깼어
잠시 침대에 앉아서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데 화장실이 다녀오고 싶더라구
살짝 진정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방 문을 나섰어.
내 방을 나서면 바로 왼 편에 화장실이 있는데 거실이 살짝 보이는 위치였거든?
거실은 당연히 어두컴컴했고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서 볼 일을 보는데
뭔가 이상한거야.......
분명히 위화감이 있었어....... 뭔 가를 본 거 같은데 본 게 맞나? 진짜로 내가 본 걸까?
잠이 달아 나면서 방금 내가 본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거야.
내가 방 문을 나서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잠시 스치듯 쳐다본 그 거실에.......
알 수 없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었어........
하얗게 쇤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졌고
새하얀 소복을 입은 채로 한 쪽 무릎을 새워 앉아서 거실 중앙에 계셨어.......
내게 등을 돌린 채로 말이야......
이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던 게 스치듯 거실을 바라 본 것 뿐인데
머리 속에 이 장면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잊혀 지지가 않는거야
완전 멘붕이 되서 화장실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한 참을 앉아서 떨다가 그렇게 동이 트고 화장실에서 나오게 되었어
내가 요즘 가위를 자주 눌려 몸이 허 한가 보다 그래서 헛 것을 보는가 보다 하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출근을 하고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했어.
그렇게 또 그 기억은 점점 잊혀지고 2년 정도를 그 집에서 살았지
지금은 그 집에서 이사를 해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어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좋았던 것은 내가 더 이상 가위를 눌리지 않게 된 거야
정말 거짓말처럼 가위 눌림이 딱 끊어졌어.
매일 밤 나를 괴롭히던 가위가 사라지고 나니 잠자리가 너무 편안하더라
요즘도 가위는 잘 안 눌려. 너무 피곤하면 눌리긴 하는데
그 집에 살 때 처럼 콱 눌리진 않고 강도가 상당히 약한 가위만 가끔씩 찾아와
그래도 그 날 밤 거실에 앉아 있던 그 할머니 장면 만큼은 아직도 뇌리에 새겨져서 잊혀 지지가 않더라
그리고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 줄 에피소드는 얼마 전에 일어났어
부모님이랑 내가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하고 동생도 우리 집이 있는 단지로 이사를 왔어.
동생이랑 나랑은 괴담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둘이 주말에 심야괴담회를 함께 봐.
시즌 1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에피소드를 함께 즐기고 있어
그러면 당연히 이런 저런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게 되잖아?
동생이 뒤따라 이사 온 지 얼마 안되는 주말에 어김없이 우리는 심야괴담회를 보고
우리만의 괴담회가 열렸지.
나는 그 동안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 했던 지난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 줬어
계속 가위를 눌렸던 일과 그 날 밤의 할머니에 대해서
그랬더니 동생이 벙 찐 표정이 되더니 이야기 하나를 해주더라
자기가 그 때 집에서 조카들은 자고 오라고 놓고 가면서 자기는 잘 안자고 갔던 거 기억하냐고
생각해 보니 그랬더라구 조카들은 주말만 되면 당연한 듯이 우리 집에 와서 있었는데
동생은 항상 낮에 와서 같이 놀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갔어
나는 집이 좁으니 불편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더라.
전에 살 던 집에 이사를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놀다가 너무 늦어진 밤에 동생이 안방 옆 작은 방에서 자고 간 일이 있었대
그리고 그 날 밤에 동생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을 꾸고 나니 그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대
꿈 속에서 자기는 작은 방에 앉아 있었는데 방 문은 열려 있고 거실이 보였대.
아무 생각없이 거실을 바라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실 저편 내 방 쪽에서
왠 '쪽진 흰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가 허연 눈동자를 부릅뜨고 입을 찢어져라 벌린 채
괴성을 지르면서 작은 방으로 네 발로 기어서 달려왔다는 거야
그 끔찍하게 벌어진 입이 자기 머리를 삼키려고 하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대
너무 선명했던 꿈에 그 집에서 자려고 하면 그 날 일이 떠올라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대
그래서 잠은 왠만하면 돌아가서 잤다는 거야
동생 역시 다른 가족들이 불안해 할 까봐 따로 얘기는 하지 않았다더라구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둘 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한 동안 넋을 놓고 있었어
그리고 옆에서 듣고만 있던 엄마가 그러더라
자기도 그 집에선 영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그리고 어디 던져 놓아도 꿀잠을 자던 니 네 아빠가 그 집에서는 유독 자다가 끙끙 앓고 설치길래
물어보니 아빠도 악몽을 자주 꾸셨다더라.
그 집터가 나빴던 걸까....... 온 가족이 그 집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더라.
그런데 웃긴 것 다른 가족이 불안해 할까봐 아무도 이걸 얘기 안하고 있다가 이제야 알게 된 게 좀 웃기면서도 따듯하긴 하더라 ㅎㅎㅎㅎ
동생과 내가 함께 본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대체 누구셨을까.........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해를 끼친 것도 아니라 심심한 이야기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나름 소름돋는 체험이었어
톨들 퇴근 준비 잘하구 비가 많이 오던데 아무런 피해없이 잘 지나가길 바랄게
즐거운 주말 되라구
심야괴담회도 꼭 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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